가속화하는 엔화 약세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연임 도전’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메이지야스다 종합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해 엔·달러 환율이 170엔까지 오르면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이 마이너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에서는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실질임금이 2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봄철 노사 임금협상(춘투) 효과가 반영되는 하반기에는 실질임금이 플러스로 전환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해 미일 금리 차를 노린 달러 매수, 엔화 매도가 쏟아졌고 엔화 가치가 연일 추락(엔·달러 환율 상승)하면서 이 같은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올해 춘투의 평균 기본급 인상률(총 임금 인상에서 정기 승급 제외)은 3.57%다. 기업들이 전년도와 같은 수준(90%)으로 이를 반영한다고 가정할 경우 총 급여 증가율은 3.4%를 밑돈다. 실질임금이 플러스가 되려면 물가 상승률이 3.4%보다 낮아야 한다. 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환율이 160엔일 경우 10월 이후 실질임금 산출 시 적용하는 집세 제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2% 수준이지만 170엔이면 3.4%로 ‘3.4% 미만’인 임금 상승률보다 높아진다. 이는 일본 정부의 CPI 상승률 전망치(2.5%)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수입물가 상승률의 경우 150엔일 때는 4.1% 수준이지만 160엔에서는 8.7%, 170엔에서는 13.5%로 뛰며 전체 물가를 끌어올린다.
임금 인상을 통해 실질임금을 플러스로 전환하려는 기시다 정권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시다 총리는 지지율 반전을 위해 6월 1인당 4만 엔의 정액 감세를 실시해 여름 보너스와 맞물린 임금 인상 효과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낮은 내각 지지율에다 최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완패한 기시다 총리로서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와 총리 연임 계획에 적신호가 켜진 만큼 임금 인상 효과를 지렛대로 삼아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 닛케이는 “엔저로 물가가 더 오르면 감세로 인한 경제 효과는 약화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전망은 정부의 위기감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고 진단했다. 늘어나는 가계 부담 역시 정권을 향한 화살이 될 공산이 크다. 미즈호리서치는 올해 엔저 및 고유가로 인한 가계당 지출 부담액이 전년 대비 평균 10만 6000엔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뚫은 지난달 29일 약 5조엔(약 48조 원) 규모의 시장 개입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행이 1일 공표한 당좌예금 잔액 전망 자료를 보면 환율 개입을 반영하는 ‘재정 등 요인으로 인한 감소액’이 7조 5600억 엔이었다. 은행 간 자금 거래를 중개 회사가 환율 개입이 없는 상황을 전제로 예상한 잔액은 2조 500억~2조 3000억 엔으로 시장에서는 두 액수의 차액인 약 5조 엔을 환율 개입에 투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시장 개입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며 개입 여부는 이달 말 발표되는 재무성 개입 실적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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