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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저출생'부터 협치하라

[한영일 사회부장]

여당 선거 대참패는 '불통'탓 명확

대통령 국정 '협치'로 방향 틀어야

여야 공통공약 '저출생'이 시금석

진영 떠난 입법·정책협의체 구축

민심에 '충성'하는 리더가 돼야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정권 교체로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팍팍한 국민의 삶은 여전하다는 시대상을 꿰뚫은 말로 많은 공감을 받았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겠다며 국민의 심판대에 선 정치권의 희비가 크게 갈렸다.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300석 가운데 192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여당 프리미엄’마저 지켜내지 못한 윤석열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여소야대를 맞아야 하는 첫 대통령이 됐다. 앞으로 펼쳐질 가시밭길이 눈에 선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대통령을 향한 불통 문제, 김건희 여사와 이종섭 전 주호주 대사를 둘러싼 특검 요구 등이 쏟아지고 있다. 선거에서 진 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당연한 몫이다.

그렇다면 야당이 선거에서 압승했다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변화할까. 여전히 정책 주도권은 여당을 비롯한 행정부에 있다. 앞으로 3년간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의 대결이 이전처럼 지속된다면 우리의 살림살이는 결코 나아질 수 없다.

이제 윤 대통령에게 협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싫든 좋든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야당에 과감하고 확실하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민주당 역시 ‘의회 점령군’처럼 오만한 자세를 보인다면 다음에 있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는 후폭풍을 맞을 것이다.

협치는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윤 대통령이 선거 이후 첫 입장을 낸 국무회의에서 공언한, 국민과 더 낮은 자세로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약속의 징표이기도 하다.

그 첫 번째는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한 과감한 행보여야 한다. 여야를 아우르는 거국적인 사회적 협의체 등을 꾸려 입법과 정책이 패스트트랙 형식으로 빠르고 현실성 있게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이번 총선에서 여당과 야당은 저출생 극복 정책을 각각 제1·2호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증거다. 전 세계 꼴찌의 출생률 속에서 지방이 빠르게 소멸되는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아이가 사라진 세상을 생각해보자. 이 한 번의 선거에서 어느 편이 이기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출생과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정책은 ‘진실성’과 ‘절박함’으로 추진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전국을 돌며 스물네 번의 민생 토론회를 열어 수많은 개발 공약을 쏟아냈는데도 왜 선거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나. 진실성의 문제다. 국민들은 민생 토론회가 표를 위한 행보였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얄팍한 포퓰리즘적 민생 토론회에 기대다가 정작 민심은 챙기지 못한 결과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올 1분기에 0.68명으로 떨어지며 0.7명 벽마저 무너졌다. 더 추락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여성가족부의 2023 가족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30대의 경우 “아이를 갖겠다”고 답한 사람은 27%에 그쳤다. 초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30세 이하에서는 15%에 불과했다. 이따금씩 내려가는 고향 마을에서는 늙은 주인마저 잃은 빈집이 빠르게 늘어간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는 모두 출생률을 올릴 인구부(인구위기대응부)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육아휴직 확대와 육아기 단축 근로를 비롯한 다양한 재정 투입 등도 약속했다.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 방향성은 같다.

인구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될 인구부 설치를 하루빨리 서두르고 수장에는 여야 간 협치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앉혀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민심 앞에 충성해야 한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매서운 지적을 그저 ‘가르침질’이라고 폄훼해서는 안 된다.

위기를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은 결국 협치와 타협뿐이다. 그 시작은 진영의 논리를 떠나 국가적 문제가 된 저출생 극복이어야 한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에 치인 대통령으로 남을지 아니면 출생률을 반등시킨 대통령으로 남을지 선택의 순간이 왔다. 윤 대통령이 ‘용산 벚꽃’을 볼 시간은 아직도 세 번이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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