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갱단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60%를 장악하면서 ‘무법 천지’로 변한 아이티가 3일(현지시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범죄자 4000여 명이 탈출하는 등 치안이 무너진 상황에서 대규모 폭력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아이티 정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비상사태를 선포함과 동시에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 사이 야간 통행을 금지하는 조치도 함께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를 포함하는 서부 지역에 적용되며 추후 변경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이티 정부는 비상사태 선포와 통행금지 조치가 ‘질서를 회복하고 현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 성명은 현재 케냐를 방문 중인 아리엘 앙리 총리를 대신해 패트릭 미셸 브아베르 경제장관이 승인했다고 덧붙였다. 앙리 총리는 지난 1일 케냐와 경찰 파견을 위한 상호 협정에 서명한 바 있다.
아이티 갱단은 전날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위치한 국립교도소를 습격해 수 천명의 범죄자를 탈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적어도 1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3800여 명으로 추정되는 재소자 가운데 99명만이 남은 상태다. AFP통신은 최근 자사 특파원이 교도소를 방문한 결과 10여 구의 시신을 확인했으며 교도소는 문이 열린 채 텅 비어있었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인 르 누벨리스트에 따르면 국립교도소에는 악명높은 갱단 두목들과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범들이 수감돼 있었다. 이 매체는 갱단이 교도소 공격에 앞서 지난달 29일부터 드론을 이용해 교도소 내부 상황을 정찰했다고도 썼다.
아이티는 지난 2010년 대지진으로 30만 명이 숨지고 18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의 재난으로 미주 대륙의 최빈국으로 전락한 상태다. 또 지난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혼란은 가속화됐다. 특히 최근에는 무장 갱단이 날뛰며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아이티에는 100여 개의 무장 갱단이 난립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지난 1월에만 갱단이 살해하거나 납치해 상해를 입힌 사람이 1100여 명에 이른다. 이 같은 폭력으로 인한 치안 악화, 심각한 연료 부족, 치솟는 물가 등으로 행정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아이티는 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케냐로부터 1000명의 경찰을 파견받기로 약속해 유엔과 케냐 의회의 승인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케냐 법률과 배치된다는 법원 판결에 따라 파견은 지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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