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지뢰 위험지역을 꼽는다면 한반도다. 비무장지대(DMZ)에만 약 200만발, 후방지역에 3000여 발이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전 이후 지뢰로 죽거나 다친 군인·민간인이 3000∼4000명에 달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토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재, 평화둘레길 조성 등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도 지뢰 제거는 시급한 사안이다.
국제민간단체 ‘아포포’(APOPO)에 따르면 한반도 전체 지뢰 매설 추정지역 면적은 약 1억2437만㎡, 이를 모두 제거하는데 약 469년이 걸리고 비용은 약 1조원에 달한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 군도 지뢰 200만발 정도가 DMZ 인근의 남북 지역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할 뿐 묻힌 지도 등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지뢰제거연구소는 각종 군 자료를 토대로 남측에는 127만발, 북측에는 80만발의 지뢰가 묻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南 지뢰지대 중 94.8% 미확인지역
군이 파악한 확인지뢰지대는 315만7만6100㎡다. 한국지뢰제거연구소는 미확인지뢰지대가 5억7740만5100㎡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전체 지뢰지대 중 군이 파악한 곳을 제외하면 미확인지대가 94.8%에 이른다. 특히 DMZ 내부의 경우 확인지대가 2.7%뿐으로 모든 지역이 미확인지대에 해당된다. 민통선 이북 지역은 15.4%가 확인지대지만 역시 지뢰 매설 여부를 알 수 없는 곳이 84.6%에 달한다.
문제는 이곳에 묻혀 있는 지뢰가 아직도 살상력을 지닌 살아있다는 존재라는 점이다. 실제 경기 북부지역에서는 대전차지뢰 폭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인지뢰 사고는 전국에서 발생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휴전 중인 한반도 보다 더 많은 지뢰가 묻힌 나라가 최근 생겼다. 2년 가까이 러시아와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다.
미국 NBC 방송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지구상에서 지뢰가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의 27개 지역 중 11곳에 지뢰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면적으로는 우크라이나 국토의 약 30%에 해당하는 17만 제곱킬로미터(㎢)가량이 지뢰 위험지역이다. 남한 면적의 약 1.7배에 달한다.
매장된 지뢰의 종류도 탱크나 큰 버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강력한 대전차 지뢰부터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수 있는 대인 지뢰, 러시아군이 개조한 부비트랩이나 불발탄 등으로 다양하다.
우크라, 남한 면적 약 1.7배 지뢰 묻혀
국제 원조 단체들에 따르면 2022년 2월 전쟁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1천여명이 지뢰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관측된다. 사상자 대부분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탈환한 지역의 주민들로, 자신들의 농장에서 다시 농사를 지으려고 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그간 우크라이나에서 작은 캔 음료 정도의 크기인 POM-3로 불리는 치명적인 신종 대인 지뢰를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러시아가 직접 개조해 사용하는 POM-3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색 및 해체 작업이 더 어렵게 만들어졌다. 러시아가 점령했던 일부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겨냥해 설치한 지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년간 곳곳에 매장된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뢰 제거 비정부기구(NGO) 헤일로 트러스트 등이 나서 지뢰 해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제임스 코완 헤일로 트러스트 최고경영자(CEO)는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직원 1200여명이 우크라이나의 탈환 지역에서 지뢰를 제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완 CEO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헤일로 트러스트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제거한 지뢰는 대전차 지뢰 8500 여 개를 포함해 2만 여 개에 달한다. 이러한 지뢰 제거는 대부분 유엔개발계획(UNDP) 등을 통한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다.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지뢰 제거에 필요한 지원금 약 1억 달러(한화 약 1334억 원)를 포함한 953억 달러(약 127조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원조 예산안이 논의 중이다.
타이어·통나무 등 원시 방법 지뢰 제거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통나무와 타이어로 대인 지뢰를 제거하는 영상이 공개되면 화제를 모으고 있다. 21세기 전쟁터에서 지뢰 제거는 안전 우선 접근 방식이 아니라 여전히 원시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최근 텔레그램과 엑스(트위터)를 통해 공유된 영상에서 한 군인이 기다란 통나무를 굴려서 지뢰를 때리는 장면이 담겼다. 또 다른 영상에서도 러시아 군인이 긴 막대기로 지뢰를 폭파하려는 듯 지뢰를 반복적으로 내리치지만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일부 군인들이 지뢰 근처에 통나무를 굴리기도 했다. 영상이 끝날 무렵 지뢰는 폭발한다.
지뢰 제거 장비나 특수 보호 장비 없이 위험을 무릅쓰며 지뢰를 제거하는 건 우크라이나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한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는 한 군인이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을 향해 타이어를 던져 지뢰를 제거하는 모습이 보인다. 던진 타이어가 도로에 닿자마자 폭발이 일어났고, 폭발 후 군인은 파편이 튀었는지 확인하는 듯 옆구리와 등을 문질렀다.
군인들은 긴 막대기, 밧줄과 갈고리, 유리 섬유 막대나 때때로 죽은 동물의 사체를 이용해 지뢰를 찾는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뢰는 특히 러시아군에 의해 두드러지게 사용됐다. 러시아가 셀 수 없이 많은 폭발물을 설치해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묻힌 국가가 되었고 수백 명의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우크라이나 측은 주장했다.
2년 전쟁으로 민간인 사상자 830여명
우크라이나는 국토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7만4000㎢ 규모에 잠재적으로 지뢰나 전쟁 잔해 폭발물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지난해 11월 전쟁 20개월 동안 지뢰나 폭발물과 관련해 561건의 사고가 보고됐고, 사망자 264명, 부상자 571명 등 민간인 835명이 사상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의 지뢰 제거에 370억달러(약 50조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실제 지뢰 설치 지역이 너무 넓어서 완전히 제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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