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류탄은 손으로 던지는 유탄이다. 현대와 유사한 수류탄의 등장은 중세 시대로 대략 1000년 전에 등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 시대는 수류탄과 비슷한 무기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사용된 ‘그리스의 불’이라고 불리는 폭탄이다. 이 무기는 항아리나 통 안에 액체화약을 넣고 손이나 노포 등으로 투척해 불을 붙이는 식으로 운용했다. 현대의 ‘소이탄’과 유사한 형태다. 예를 들어 몽골군이 기름이 담긴 한 손에 들어갈 크기의 작은 항아리에 불심지를 꽂아 투척하는 용도로 사용한 기록이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러한 화공무기를 화구(火毬)라고 명명했다.
근대 유럽에서 개발된 수류탄은 위력은 확실하지만 위험도도 컸다. 소프트볼 크기의 도기, 또는 쇠로 만든 공 안에 화약 채워넣고 도화선 꽂은 폭단 형태다. 병사가 여러 개 넣은 보따리를 지고 적진 정면까지 행군해 불을 붙이고 집어던져 사용했다. 하이 무거운 폭탄을 제대로 던지기 위해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병사를 선발해 ‘척탄병’이라고 명명하고 그들에게 자살돌격대 수준의 돌격 임무를 맡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근현대 시대인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라이플이 머스킷을 대체하고 연발총이 대량 사용되면서 수류탄 투척이 사실상 자살 행위로 척탄병의 가치가 쇠퇴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이 참호전으로 흘러가자 수류탄의 중요성이 다시 커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의 불’ 유래
특히 러일전쟁에서 영국 참관단은 일본군이 수류탄을 적절하게 사용했고, 영국육군 수뇌부는 이후의 전장에서 수류탄이 유용하게 쓰일거라는 판단하에 908년 통칭 헤일즈 밤으로 불리는 ‘충격신관식’ 수류탄을 개발하며 수류탄이 근현대 전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초창기의 수류탄은 당시 공업기술상으로는 워낙 불량이 많았고 불발이나 사고의 위험도 컸다. 심지어 참호에서 수류탄을 던지려고 투척 자세를 잡다 충격신관이 참호벽 어딘가에 부딪쳐 작동해 자폭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런 탓에 충격신관형 수류탄은 신용받지 못한 채 점차 도태되고 대신 양측의 병사들 사이에서 나무막대 같은 것에 폭약을 달거나 먹고 남은 군용식량의 깡통에 폭약과 파편이 될 것을 채워넣고 뚜껑을 덮고 도화선을 박아넣어 연결한 급조형 수류탄을 만드는 것이 유행했다. 일명 ‘잼 깡통 수류탄’이다.
이와 유사한 수류탄이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사용된 ‘막대형’ 수류탄이다. 현대 전쟁 사용되는 수류탄 주종은 ‘지연신관식’ 수류탄이다.
참고로 손으로 던지는 유탄은 수류탄, 총으로 발사하는 유탄은 총류탄이라 불린다. 총류탄은 제2차 세계대전 때나 썼던 무기로 현대 전장에서는 유탄발사기를 사용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최첨단의 각종 무기가 등장으로 수류탄의 활용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당장 병사의 팔심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수류탄 투척 방식에 일대 변화를 줄 기술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소형 헬리콥터를 닮은 무인기에 수류탄을 매달아 원거리까지 이동시킨 뒤 충돌 공격을 하는 전술이 시험 단계에 들어섰다.
파퓰러 사이언스 등 해외 매체에 따르면 미국 해병대는 호주 방위산업체 디펜텍스가 개발한 ‘드론40’이라는 무인기로 수류탄을 날려보내는 기술을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군사기지에서 시연하며 실전 배치를 준비 중이다.
공개된 소형 무인기인 드론40은 성인의 손바닥만 한 길이로 작은 방망이를 닮았다. 모두 4개의 프로펠러가 장착돼 배터리로 작동한다. 최대 60분간 비행할 수 있고 최고 시속 72㎞로 날아가는 게 가능하다.
수류탄 투척 드론으로 ‘공중 지뢰밭’ 설치
심지어 위성항법시스템(GPS)을 갖춘 원격 조종장치로 움직이고 최대 이륙 중량은 300g이다. 특히 주목되는 건 최대 이동거리가 무려 19㎞라는 점이다. 전투 중 적을 향해 던지는 수류탄의 투척 거리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사람의 팔심에 의존할 경우 수류탄은 대개 투척 거리가 수십m에 불과한 상황. 이 무인기를 쓰면 적이 아군 코앞까지 접근하지 않고도 수류탄을 더 유연하게 사용하며 작전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이뿐이 아니다. 미 해병대는 무인기를 이용한 수류탄 투척 기술을 응용하면 일종의 ‘공중 지뢰밭’도 만드는 방안도 시험하고 있다. 수류탄을 매단 무인기를 특정 목표에 충돌시키지 않고 하늘에 그대로 띄워 아군 진지 위를 빙빙 돌게 하면 적 항공기나 무인기 접근을 막는 것이다. 상상 개념이지만 빠른 미래에 현실화 될 수 있는 작전 방식이다. 그 중심에 수류탄을 투척하는 드론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경우에 따라 수류탄이 아닌 다른 물체 활용도 가능하다. 연막탄이나 정찰용 감시 센서, 전자전 장비를 장착하며 적진을 공격하고 부대를 방어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무인기에 수류탄을 매달아 공격하면 사릴 무인기도 같이 파괴되지만, 이런 비살상 임무에는 무인기를 회수해 재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무인기를 이용한 수류탄 공격은 소부대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다만 무인기를 사용하기 위한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특정 목표물을 정확히 파괴할 수 있는 정확성과 신뢰성 확보가 관건으로 보인”고 말했다.
지난 2021년 한국드론혁신협회도 ‘수류탄 투척드론’을 육군에 적용하는 방안을 소개한 바 있다. 탑재중량 10kg미만의 드론으로서 무장을 탑재해 4~5km를 비행할 수 있도록 방식이다. 해당 드론에는 주야간 감시카메라, 거리측정기 등도 적용하고 10발의 경량 수류탄이나 섬광탄, 소이탄, 연막·최루탄 등을 싣어 속도와 고도, 거리 등을 분석해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투하하도록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물 공중으로 6~9m 날려 드론 ‘포획’
지난 2019년 런던 개트윅(Gatwick) 공항에서 드론은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잘못된 장소에서 비행할 때 보안상의 위험을 일으킬 수도 있는 대규모 사고가 발생했다. 현지 매체 ‘뉴아틀라스’에 따르면 미 육군 기술자들은 이 사례를 검토해 대응책으로 드론을 포획하는 수류탄 형태 제품의 아이디어의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다. 드론을 포획하는 수류탄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미 육군에 따르면 뉴저지주 피카티니 조병창(Picatinny Arsenal)에서 실험용 40mm 수류탄이 발명됐다. 개별 병사들은 M320 휴대용 수류탄 발사기를 이용해 불량 드론을 쏠 수 있다.중무장 소대는 대형 mk-19 유탄 발사기를 활용해야 한다. 전자는 수백 야드 떨어진 곳에 있는 드론을 겨냥할 수 있는 반면 후자의 설치는 더 긴 거리에서도 가능하다.
사용 방식은 발사된 장치가 공중 드론에 가까워지면 수류탄 안에 있는 서보가 노즈콘(미사일·로켓·비행기 등의 맨 앞부분)을 해제한다. 이를 통해 스프링에 탑재된 그물을 수류탄 몸통에서 앞으로 튀어나오게 한다. 그물은 공중에서 회전하면서 6~9m까지 뻗어 드론을 포획하는 방식이다. 그물에 사로잡힌 드론은 지상으로 추락한다. 서보는 통합 제어보드의 신호를 통해 통제되며, 지상의 누군가가 원격으로 작동하거나 탑재된 근접 센서를 통해 활성화할 수 있다.
미 육군에 따르면 초기 테스트 결과, 수류탄 방식으로 그물을 치는 것은 드론 조종 기술이 필요없어 다른 접근 방식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한 사람이 수십 개의 수류탄을 운반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군집 드론 전체를 격추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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