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한국군의 새로운 적(敵)으로 떠올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여성 1인당 0.78명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50만명에 달하는 현재의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CNN 방송은 최근 ‘한국군의 새로운 적: 인구 추계’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은 현재 약 50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합계출산율)가 0.78명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에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발언을 인용해 “현재의 출산율로는 병력 감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도 꼬집었다.
한국군이 현재의 병력 수준을 유지하려면 매년 20만 명이 입대하거나 징집해야 하지만 2022년 출생아 수는 25만 명에 못 미쳤다. 남녀 성비가 50대50이라고 가정할 경우 2022년 남자아이가 군에 입대할 나이가 되는 20년 뒤에는 최대 12만5000명의 남성만 입대할 수 있는 셈이다.
2042년에 연간 12만명 입대 그칠 듯
특히 병력은 해가 지날수록 더 빠르게 감소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연간 출생아 수는 2025년 22만 명, 2072년 16만 명으로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주민등록인구와 생존율 등을 반영해 분석한 병력 수급 전망에 따르면,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합쳐 현재 50만여 명 수준인 국군 상비병력은 오는 2039년 39만3000여 명으로 40만 명 선이 무너지고 2040년에는 36만 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CNN은 한국 정부의 군 정예화 추진은 판단 미스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인구 감소에 대비해 2006년 67만명이던 상비병력 정원을 50만명 이하로 줄이고, 군 정예화 등을 추진해왔다. CNN은 이에 대해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올해에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5번 발사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일 적의 핵 공격 시 주저 없이 핵으로 보복하겠다고 말하는 등 안보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고 것이다.
한국군은 그러면서 ‘인력 중심 군대’에서 ‘기술 중심 군대’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은 미미하다고 CNN은 지적했다. CNN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를 들어 “현대 전장에서 병력 수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드러났다”고 했다. 실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 지상군을 구성했던 36만 명의 병사 중 31만5000명을 전장에서 잃었다며 우크라이나군이 서방 파트너들로부터 공급받은 드론과 첨단 무기를 사용해 모스크바 병력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기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고 했다. 이를테면 영토를 점령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인력이 필요하고, 전장에서도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운영하고 감독하려면 잘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NN은 한국 내 병력자원 부족 문제의 대응책으로 몇가 방안이 거론했다.
가장 먼저 300만 명이 넘늕 예비군 활용안을 제시했다. 310만 명인 예비군 동원 시스템을 개선하면 병력난 해소에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 군은 현재 예비군 중 일부를 대상으로 1년에 180일 동안 훈련을 받게 해 기술 숙련도를 높이는 시범사업을 운용 중이다.
병력 대안, 예비군 강화·여성징병 소개
여성 징병제도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했다. 아직 가부장제가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비용과 여성 출산 등 여러 복잡한 요인을 감안하면 필요한 비용이 수익 효과보다 더 클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급여가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관측했다.
군 부사관 등 전문 간부 병력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지만 군 간부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혜택 부족으로 지원율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부사관 지원자 수는 2018년 약 3만 명에서 2022년 1만9000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CNN은 특히 통계청의 최근 발표를 인용해 한국의 기록적인 저출산 현상이 앞으로 더욱 심화해 2025년에는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변화를 위한 시간표가 한국군에 없다. 한국에는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신들은 그 동안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 이유와 파급 효과 등에 주목해왔다.
CNN은 지난해 7월에 ‘한국은 고령화를 준비 중’이란 보도를 통해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보육시설이 점차 줄어드는 반면 노인 인구가 늘면서 요양시설이 많아지는 한국의 현실을 진단한 바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초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칼럼을 통해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국가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했다. 로스 다우서트는 NYT 칼럼니스트는 당시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의 인구 감소가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불가피한 노인 세대의 방치, 광활한 유령도시와 황폐해진 고층빌딩, 고령층 부양 부담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의 해외 이민이 나타날 것”이라며 “한국이 유능한 야전군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합계 출산율 1.8명인 북한이 언젠가 남침할 가능성도 있어 저출산과 안보 위협의 연관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군 안팎으로 병역자원 감소에 대해 우려는 이미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병역 급감 대비 ‘골든타임’10여년 불과
한국국방연구원(KIDA) 조관호 책임연구위원의 ‘병역자원 감소 시대의 국방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국군의 정원은 50만명이었으나 실제 연말 병력은 48만명에 그쳤다. 2023년 병력이 50만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 될 것이라며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제기했다.
국군의 연말 병력은 2002년 69만명(정원 69만명)을 기록한 이후 2017년까지 60만명 이상을 유지했으나, 2018년 57만명을 기록한 이후 계속 감소해 2021년에는 51만명으로 50만선에 턱걸이했다. 국군의 대명사로 여겨진 ‘60만 대군’이 깨진 지 불과 4년 만에 ‘50만 대군’도 과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국군 병력수가 북한군 상비군 118만명의 절반에 훨씬 못미치는 약 40%에 불과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역 병사 수의 급감은 저출생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상비병력 50만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년 22만명을 충원해야 하나, KIDA가 주민등록인구와 생존율 자료를 토대로 연도별 20세 남성 인구를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2036년부터 20세 남성 인구는 22만명 아래로 떨어지며, 지난해 출생한 남아가 20세가 되는 2042년에는 12만명까지 급감하게 된다.
조 연구위원은 우리 군이 저출생에 따른 병역 자원 급감이라는 ‘결정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10여년에 불과하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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