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문화계는 분야별로 성장세가 돋보였지만 그 이면의 성장통 또한 곳곳에서 지적됐다. 양적 성장의 한계가 드러난 가운데 ‘K컬처 전성기’로 나아가려는 과도기적 면모가 드러난 한 해였다는 평가다.
위기론이 가장 무성했던 부문은 영화 분야다.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한국 영화는 ‘범죄도시 3(1069만 명)’ ‘밀수(514만 명)’ ‘잠(147만 명)’ ‘30일(200만 명)’ ‘서울의 봄(1074만 명)’ 등 5편에 그쳤다. 추석 연휴 개봉 영화 중에서는 막대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긴 대작 영화가 한편도 없었다. 영화 시장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서 그나마 흥행을 견인한 것은 애니메이션과 소규모 작품들이다. ‘엘리멘탈(724만 명)’ ‘스즈메의 문단속(557만 명)’ ‘더 퍼스트 슬램덩크(479만 명)’ 등이 흥행했다.
다행히 연말 ‘서울의 봄’과 ‘노량’이 파죽지세의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의 봄’은 누적 관객수 10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범죄도시 3’을 누르고 올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노량’은 개봉 엿새 만에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초반 기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영화계의 결집이 필요한 가운데 국내 최대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는 내홍을 맞았다. 국내 3대 영화제로 꼽히던 대종상영화제는 주최 측이 파산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확대된 영향력만큼이나 다양한 작품이 쏟아지며 눈길을 끌었다. 500억 원대 제작비를 들인 ‘무빙’의 성공으로 침체되어 있던 디즈니+의 활약이 돋보이며 ‘이름값’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평이다. 넷플릭스는 상반기 ‘더 글로리’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국내 OTT는 올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이용자 수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OTT 11월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쿠팡플레이(508만 명)·티빙(494만 명)·웨이브(399만 명) 순으로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다. 국내 OTT 1위를 두고 경쟁을 펼친 티빙·웨이브가 손을 잡으며 시장의 변화가 예고됐다.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 합병이 완료될 경우 시장을 재편할 거대 OTT가 탄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연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올해 1~9월 누적 티켓판매액(대중예술 포함)은 8295억 원에 달한다. 분기마다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연간 티켓판매액이 총 1조 원 규모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13년 초연된 뮤지컬 ‘레베카’는 지난 9월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높은 인기에 힘입어 이달 10주년 기념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연극은 무대 위로 향한 스타들로 주목받은 한 해였다. 연초부터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 배우 김유정·정소민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는 박하선·한혜진이 출연했고, ‘파우스트’ ‘나무 위의 군대’에는 각각 박해수·손석구가 무대 위로 복귀했다.
연간 음반 판매가 1억 장을 넘어서는 등 K팝의 성장과 글로벌 인기 속 풍파가 일었던 한 해였다. 연초 일어난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 사태는 K팝 비즈니스가 고도화·산업화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 SM엔터는 20년 넘게 함께해 온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와 결별해 SM 3.0 시대를 맞았다. 이 사태는 SM엔터 시세조종 사건이 종결되지 않아 현재진행형이다.
고질적인 K팝 산업의 병폐를 드러낸 건 피프티피프티 사태였다. ‘큐피드’로 빌보드 핫100에 오르는 등 ‘중소의 기적’을 써내려가던 피프티피프티는 결국 계약 분쟁 사태를 맞이했고, K팝 산업의 내부통제와 거버넌스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K팝 최고의 그룹 BTS는 올해 말을 기점으로 전원 병역 의무에 들어갔다. 이들은 2025년 병역 의무를 마치고 다시 완전체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K팝 최고의 걸그룹 블랙핑크는 그룹활동 재계약에 성공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베를린 필·빈 필·로열콘세르트허바우(RCO)·뮌헨 필·홍콩 필·오슬로 필·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등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가 모두 한국을 찾았다. 키릴 페트렌코와 파보 예르비, 클라우스 메켈레·세묜 비치코프 등 손꼽히는 지휘자들의 무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최고의 연주자들도 한국 무대를 찾았다. 조성진·임윤찬은 물론이고 랑랑·요요마·유자 왕·안드라스 시프 등 스타 연주자들이 국내 무대에 섰다. 조성진은 베를린 필 상주 음악가로 선정됐고, 임윤찬의 실황 음반은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올해의 클래식 명반’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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