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권태와 무기력에 빠지곤 한다. 의미 없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우리는 점점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 가고, 무언가 새로 시작할 원동력도 상실한다.
관료제의 톱니바퀴 속 주인공 윌리엄스(빌 나이) 역시 그렇게 늙어 왔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삶이 단 9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
윌리엄스는 그제서야 자신의 삶에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일들을 시도한다. 혼자 우아한 식사를 즐기기도 하고, 취하기도 하고, 회사에도 빠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는 정적인 관료제 사회를 뒤바꾸는 일을 해 낸다. 그는 결국 세상을 떠나지만, 그의 뜻은 남아 언제나 흐린 런던 날씨 같은 세상 속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일본의 세계적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2년 작 ‘살다’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작과 큰 줄기에서 차이는 없다. 작품의 메시지가 그만큼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의미 있게 보낼까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집단적 측면에서는 관료제의 폐해를 비판한다. 흑백 고전 영화가 어렵고 불편한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는 완벽한 대안이다.
영국의 국보로까지 불리는 배우 빌 나이는 영화 속의 윌리엄스와 혼연일체를 이룬다. ‘러브 액츄얼리’에서의 가벼운 모습과 ‘어바웃 타임’에서의 진지하면서도 깊이 있는 모습 모두를 만날 수 있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에이미 루 우드 역시 해리스 역을 맡아 활발한 모습으로 빌 나이와의 조화를 이룬다. 1950년대의 영국 감성을 완벽히 재현한 배경과 의상, 음악도 좋다.
빌 나이는 이 영화로 제95회 아카데미, 제80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89년 부커상,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화의 각색을 맡아 아카데미 각색상에 노미네이트됐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올리버 허머너스 감독의 신작이다. 13일 개봉, 1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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