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국가안보 문제에 대해 군사기밀을 제외하고 군내 각종 사실에 대해 국민에게 알려줄 책임이 있다. 부대원들에게는 군의 목표와 정책에 대한 설명과 이념 무장을 위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러한 책임과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병과(兵科)가, 이른바 ‘정훈’(政訓) 병과다.
사실 군의 대내외 홍보 및 교육 업무를 책임지는 병과의 출범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미군에서 1898년 이른바 ‘미서전쟁’(미국-스페인전쟁 ) 발발 당시 군 정훈(공보) 역사가 시작됐다. 미 육군성에서는 통신원 1명을 부관감실(인사·행정)에 파견해 부관감을 통해 군 관련 정보(일명, 보도자료)를 육군성 게시판에 게재토록 했다. 이를 통해 언론들이 군 소식을 취득해 보도하도록 지원했다.
군의 보도자료 배포 관행은 1차 세계대전 전까지 계속됐다. 그러다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1914년 육군장관 부관감실에 공보자료 배포관(소령)에 임명되면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으로 프랑스에 주둔하고 있던 존 조지프 퍼싱 장군의 참모부에 보도반이 설치되기도 했다.
이후 1918년 미군은 육군 정보참모부에 홍보부를 설치했다. 1921년에는 보도부로 이름을 바꿨다. 1941년에 와서야 미 육군은 독립된 홍보국을 신설했다. 기획과 사진, 라디오 및 특수업무반 등을 편성해 조직을 체계화 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 홍보국은 입대 장병 수 급증에 따른 대민 홍보는 물론 장병의 사기 진작과 정보 제공, 이들에 대한 교육업무까지 담당하며 역할이 확대됐다. 부관감실의 ‘사기복지부’의 임무까지 이관받아 ‘홍보 및 교육처’로 개칭했다가 1947년부터 ‘군 정훈처’로 정착했다.
이처럼 정훈은 군의 무형 전력을 강화시키는 병과다. 안보관과 군인정신, 사기 등 군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아울러 군의 활약상과 군사활동 전반을 국민에게 올바르게 알리기 위한 홍보 업무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정훈병과 명칭은 ‘정치훈련(政治訓練)’ 약어
한국군의 정훈 조직과 활동은 광복군 태동기에서 출발한다. 해방 이후 1948년 국군조직법에 따라 국방부 정훈국(정치국)이 처음으로 설치됐다. 이후 육군에서 1949년 5월 12일 육군본부에 정훈감실을 편성해 정훈 활동을 시작했다. 1966년 10월 4일 정식으로 ‘정훈병과’를 창설했다.
주목할 점은 홍보 기능에 중점을 둔 미군과는 달리 우리 군의 정훈병과 명칭은 정치 사상과 이념 무장을 강조하던 시대에 ‘정치훈련(政治訓練)’의 약어로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훈병과 창설 70주년인 2019년 6월에는 정훈병과를 ‘공보정훈’(公報正訓) 병과로 이름을
바꿨다. 원활한 국민과의 소통 역할을 중시하기 위한 명분을 내세웠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군의 공보정훈과 병과 명칭이 4년 만에 ‘정훈과’로 환원이 추진된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전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공보정훈과인 병과 명칭을 애초 명칭이었던 정훈과로 되돌리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군인사법 시행령에 공보정훈과(公報正訓科)로 명시돼 있는데 이 조항을 개정하는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앞서 문재인 정부 때 국방부는 정훈병과 요원들의 다수가 ‘이견’이 많았지만 명칭 변경을 강행했다. 특히 당시 ‘정’자를 정치 ‘政’에서 바를 ‘正’으로 바꿔 군의 정치적 중립과 바른 훈련을 강조한다는 의미로 ‘政訓(정훈)’에서 ‘正訓’으로 한자 명칭을 바꿨다. 이번 개정 작업에서는 한자 명칭도 ‘政訓’으로 환원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4년 전 변경된 정훈 명칭이 단순하게 올바로 훈련한다는 의미로만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며 “교육훈련과 국방정책을 널리 알리고 보도하도록 한다는 의미까지 담긴 ‘政訓’으로 한자 명칭을 다시 환원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국어사전에는 군대에서 교육과 보도에 관한 일을 맡은 분야가 ‘정훈(政訓)’이라고 표기돼 있다.
육·해·공군 3군의 정훈병과는 공통적으로 장병들의 정신전력과 문화예술 활동, 대내외 소통 및 공보 업무를 전담한다. 그 뿌리는 일제강점기 광복군 정훈조직에서 유래했다. 당시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와 예하지대(지역부대)의 정훈조에서는 대일항전 당위성과 민족의식 고양을 위한 교육과 선전선무 활동을 수행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방부에 ‘정훈국’이 설치했다가 1949년 5월 12일 육군본부 정훈감실이 처음 발족하면서 군내 정훈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육군은 이날을 기리고자 1992년부터 매년 5월 ‘정훈의 날’ 기념식을 열고 있다.
해군 정훈병과는 1949년 5월 20일 해군본부 정훈감실이 발족하면서 시작됐다. 1948년 2월 해안경비대 총사령부에 공보실이 설치됐다가 1949년 5월 20일 해군본부 정훈감실이 참모총장 직속으로 정식 발족했다. 해군 정훈병과도 이날을 기념해 매년 5월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후 정훈병과는 분리와 통합을 반복하다가 1996년 현재의 해군본부 공보정훈실 체제로 재편됐다.
가장 늦게 정훈병과를 신설한 건 공군이다. 1950년 4월 1일 공군본부에 정훈감실을 창설했다가 1955년 4월 1일 정훈공보실로 변경했다. 2006년 다시 정훈공보처로 바뀌었다가 2009년 4월 1일 정훈공보실로 환원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2019년 6월 공보정훈실로 개칭했다.
군의 ‘공보정훈병과’가 창설된 지 올해로 70여 년이 지났다. 장병들의 정신전력 강화를 책임지는 동시에 군의 활동을 국민에게 알리는 공보정훈병과는 대표적인 비전투병과지만 그 중요성은 매우 높다는 것은 군 안팎의 공통적인 평가다.
육군은 1949년 5월12일 육군본부 정훈감실이 발족했는데, 이날을 기리고자 1992년부터 매년 정훈의 날 기념식을 열고 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육군은 지난 5월 공보정훈병과 창설 제74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박정환 참모총장 주관으로 영관급 공보정훈장교 1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 인권 참상 알리기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다. 공보정훈병과의 사기 진작을 위해 육참총장이 공보정훈장교들과 함께 한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공보정훈병과에 주요 임무 하나가 부여됐다. 장병들의 정신력을 강하게 키우는 것이다. 장병들에게 군인정신과 안보관·국가관 등을 가르치는 ‘정신전력교육’은 공보정훈병과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정신전교육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 한국전쟁(6·25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젊은 장병들에게 군인의 본분을 각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임무로 꼽히기 때문이다.
물론 군의 소식을 대내외에 알리는 공보 역할 역시 공보정훈병과의 전통적 핵심 업무다. 군 내부 사건의 외부 발설을 무조건 통제하던 시절은 이미 끝났고, 북에 대한 정찰·경계 활동에 대해 오히려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릴 필요성이 커지면서 언론과 접촉하는 최전방에 선 공보정훈장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대언론 공보를 담당하는 군 장교들은 군 내부 주요사안을 언론에 알리는 보도자료와 언론 대응 가이드라인(PG·Press Guideline)을 작성한다. 특히 안보 상황을 고려해 필요시에는 언론사 취재진의 현장취재를 적극 지원하기도 한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역 후 언론계에 진출하는 공보정훈병과 출신 장교들도 종종 나오고 있다.
전직 공보정훈장교 출신인 A씨는 “아침 일찍 출근해 작성한 메시지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을 볼 때면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며 “24시간 기자들 전화에 응대해야 하기 때문에 퇴근 후 피로를 풀기 위해 사우나라도 갈 때면 비닐 팩에 휴대전화를 넣고 들어가기도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국방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공보정훈장교는 ‘주요 대기업의 홍보실 직원들 보단 쥐꼬리 월급에 고충이 더하지만 나라를 위하는 구국의 일념으로 버티고 있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전문성 높지만 진급은 상대적으로 불리
부여된 임무 완수와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공보정훈병과지만 비전투병과인 탓에 ‘진급’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현재 육군의 경우 공보정훈병과장 겸 육군본부 공보정훈실장 직위가 ‘준장’(별 하나)으로 고정돼 있다. 반면 해·공군은 사실상 ‘대령’이 한계다. 해·공군 공보정훈실장은 몇 년에 한번 준장 진급이 기회가 주어지지만, 비전투병과 내에서도 진급시 다른 주특기에 밀리는 등의 상황이 비번해 사기 저하가 큰 병과로 꼽힌다. 해병대도 공보정훈실장이 병과 내 유일한 대령으로서 최선임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병력 규모가 큰 육군을 제외한 공보정훈병과 장교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대령이면 군 생활을 끝내야 하는 지경이다.
일각에서는 공보정훈병과는 비전투병과라는 특성상 지휘관 보직이 없다는 점에서 진급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 평가한다. 전투 부대의 지휘관을 보좌하는 참모 역할에 그치기 때문에 장성급 자리를 만들기에 한계가 있다는 게 군 내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와 관련 전직 공보정훈장교 B씨는 “대령급 공보정훈장교들은 전투병과 동기들이 장군으로 진급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해 마음속으로 설움이 많다”며 “공보정훈장교 대부분은 군의 소식을 국민에게 알리는 창구로서 공보 임무와 장병의 정신전력 강화 등 군의 대외적 이미지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 국방부의 입인 대변인이 준장에서 별 하나를 더 달아 소장으로 진급했다는 소식은 군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다. 특히 이 인사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재가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 받고 있다. 군 내부의 소식을 언론에게 적시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미 국민에게 군 소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에 미 대통령이 힘을 실어줬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 국방부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강조하는 동시에 현행 공보정훈병과 명칭을 ‘정훈병과’로 되돌리는 걸 추진하고 있다. 병과 명칭에 이견이 많았던 공보정훈병과 장교들의 자존심을 치켜세워주기 위한 조치다. 여기에 더해 전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재임 시절 각 군의 공보정훈병과장 겸 공보정훈실장을 불러 사기 진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 자리를 장성급 고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육군은 물론 해군과 공군의 공보정훈장교도 장성급 자리에 진출할 기회를 넓힐 필요성이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준장급으로 높여 육·해·공군이 돌아가며 수행한다면 군 생활 30년 넘게 쌓아온 대령급 공보정훈장교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더 활용할 수 있어 우리 군의 정훈활동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령인 합동참모본부 직제 제5조에 따르면 공보실장은 장성급 장교, 2급 이상 군무원 또는 영관급 장교로 보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대령급이 담당한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최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주요 부처의 대변인 자리가 국장급(2급)에서 실장급(1급)으로 격상되기도 했다. 이들 부처의 대변인실이 적극적인 국정 홍보에 임할 수 있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다.
국방부도 최근 공보정훈병과에서 정훈병과로 명칭을 변경하기 위한 법령 개정을 추진하는 만큼 국군 창설 이후 뿌리이자 근간으로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는 공보정훈병과 장교들의 사기 진작은 물론 주요 부처 대변인의 자리를 격상한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 군 또한 공보정훈병과에 힘을 실어주는 차원에서 합참 공보실장 자리에 대한 군 내부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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