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주점 옆 골목. 폭 3.5m 길은 성인 두 명이 양 팔을 벌리면 가득 찰 정도로 좁았고, 오르막 형태의 도로 바닥에는 ‘경사로 주의’라고 적힌 문구가 쓰여 있었다. 지난해 참사가 발생했던 이태원 골목과 유사한 형태인 것이다. 인근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 A씨는 “이 골목 앞 뒤로 가게가 많기 때문에 주말 저녁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간다”면서 “길 가장자리 쪽으로는 클럽과 주점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몰려 서있고, 그 사이로는 보행자들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혼잡하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찰청은 다가오는 핼러윈 기간을 앞두고 이 골목길의 위험 정도를 최고등급인 ‘A’로 표시했다. 경찰은 이 외에도 마포구 4곳, 용산구 5곳, 강남역 인근 골목 7곳 등 포함한 인파 밀집 예상지역 16곳을 위험지역으로 선정했다. 오는 27일부터 31일까지 ‘위험 골목’으로 선정된 길엔 매일 경찰 1260명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 중 지난해 ‘이태원 참사’의 풍선 효과로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강남구와 마포구 일대 위험 골목 6곳을 방문해보니, 모두 경사가 심하고, 골목 폭이 좁아 인파가 몰릴 경우 사고가 우려되는 모습이었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약 5분 정도 떨어진 ‘곱창 골목’은 약 30도 정도로 경사진 폭 3.8m 길에 입간판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어 가뜩이나 좁은 길이 더 좁아졌다. 여기다가 탕후루나 아이스크림 등 간식거리를 사먹으려는 사람이 멈춰서고, 그 뒤로는 길을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하면서 평일 저녁에도 정체 현상이 빚어졌다. 인근 가게 직원 B씨는 “아무래도 이 길이 홍대에서 가장 메인이라고 볼 수 있는 길 두 갈래 중 하나인데, 많이 좁다보니 주말 저녁에는 자주 길이 막힌다”면서 “핼러윈 기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면 아무래도 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이 ‘위험 골목’으로 지정한 강남역 인근 7곳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B등급으로 지정된 영풍문고 인근 골목길은 경사가 약 40도 정도로 가팔랐고, 강남대로 인근 계단길에는 성인 세 명이 나란히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은 계단이 줄지어져 있었다.
설상가상 경찰이 강남구 일대에서 위험골목으로 지정한 7곳 중 6곳에서는 불법 증축물이 적발되기도 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11~12월에 관내 인파가 많이 몰리는 지역 위주의 건축물을 점검한 결과 구청에서 134건의 불법증축물을 발견해 시정명령을 내렸다”면서 “경찰이 위험골목으로 지정한 7곳 가운데 6곳에서 모두 불법증축물이 발견됐으며, 올해는 지난 24일부터 31일까지 점검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핼러윈 참사 당시,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에도 불법 증축물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골목 내 불법으로 만들어진 철망으로 인해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이 더 좁아지면서 인명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에 서울시는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안전관리 총력 대응에 나섰다. 시는 지난해 핼러윈 기간 3만 7000명이 찾은 건대입구역 인근이 올해는 풍선효과로 4만 명 이상 몰릴 것으로 보고, 광진구와 함께 이날 ‘건대 맛의 거리'에서 인파 밀집 상황을 가정한 ‘시민 참여형 훈련’도 진행했다.
시는 최근 도입한 ‘AI 인파 감지 시스템’을 통해 인파 밀집 위험단계를 ‘주의-경계-심각’ 3단계로 구분하고, 시민 150명과 함께 밀집도를 높여가며 서울시 및 경찰·소방 등 유관기관이 인파 해산을 위해 대응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AI 인파 감지 시스템’은 CCTV 영상을 분석해 사람 수를 자동 파악해 인파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훈련에 참여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첨단 과학기술로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훈련”이라면서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재난 상황에 보다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훈련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