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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채금리 급등은 '고금리 장기전' 신호[김흥록 특파원의 뉴욕포커스]

10년물 국채금리 5% 이른 이유

인플레·금리 추가인상 우려 아닌

"초저금리 시대 종말" 전망 때문

가계·기업·정부 장기전략 짤때





1980~1990년대 TV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깨 너머로 들었던 경제 관련 이야기 중 하나는 ‘빚의 무서움’이었다. 이자가 무려 20%대인 정기적금과 재형저축이 있던 시절이니 대출금리는 더했을 것이다. 1금융권의 대출이자가 이 정도니 함부로 대출을 받았다가는 빚더미에 깔리기 쉬운 금융 환경이었다. 당시 국내에 내로라하는 기업 중에도 무차입 경영을 하는 곳이 존재할 정도였다.

2010년 이후 코로나19까지 10여 년은 초저금리의 시대였다. 미국과 유럽은 제로금리였고 국내에서도 2%대 담보대출, 3%대 신용대출이 가능했다. 지난 10여 년간 빚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필수 전략처럼 인식됐다.

30년 사이 극단적인 금리의 진자 운동을 경험한 우리는 다시 한 번 진동자가 고금리 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10년물 국채금리의 수익률 급등이 그 신호일 수 있다. 특히 최근의 금리 움직임은 고금리로 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경제적 불확실성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최근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이 5%에 이른 것은 인플레이션 불안이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5년 뒤, 10년 뒤 인플레이션 전망은 2%대로 안정돼 있다. 연준이 연내 금리를 또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원인이라면 2년물의 수익률도 올랐어야 하지만 지금 금리가 오르는 채권은 10년물 이상 장기국채뿐이다.



국채금리 상승의 진짜 원인은 투자자들이 이제 초저금리 시대는 막을 내리고 앞으로 10년은 고금리·고성장의 시대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1년 반 넘게 이어진 고강도 긴축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망가지지 않았고 소비도 계속 예상 밖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 상태로 이번 긴축 주기가 끝난다면 경제의 체력은 팬데믹 이전보다 더 강한 상태로 남게 된다. 이런 경제 환경에서 물가를 관리하려면 연준의 평상시 기준금리는 팬데믹 이전보다 높아야 할 것이다. 경제를 자극하지도, 누르지도 않는 이른바 ‘중립금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연초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이제부터 미국은 고성장·고물가 시대로 진입한다고 예고했다. 그는 2013년 이후 10년 동안 주장했던 ‘구조적 저성장론(secular stagnation)’을 철회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생산직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며 “초저가 시대의 종말”이라고 평가했다. 미국편·중국편으로 공급망이 쪼개지는 추세도 글로벌 상품의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공급망을 재편하려면 미국 내 투자도 늘려야 하고 이 역시 고물가·고성장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이 커져서다. 최근 장기물 국채금리 상승의 또 다른 한편에는 이 같은 위험에 대한 더 많은 보상(기간 프리미엄)을 원하는 추세도 녹아 있다. 정부 지출이 늘수록 국채 발행이 늘어날 텐데 당장 미국 정부가 돈을 써야 할 곳은 증가하고 있다. 전쟁은 유럽과 중동 두 곳으로 늘어나 무기 지원 예산을 늘려야 하고 인프라법 지원금도 천문학적으로 예정된 상태다. 이 와중에 중국과 연준 등 전통적 국채 매수자들의 수요도 예전 같지 않다. 높은 금리에 금융 시스템에서 또다시 문제가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채권 투자자들의 전망이 맞는다면 우리는 한동안 전쟁, 공급망 재편, 금융 불안 등 불확실한 시기를 거쳐 고금리가 일상화한 환경에 닿게 된다. 1980년대처럼 20% 대출이자까지는 아니더라도 3%대 신용대출은 한동안 오지 않을 수 있다. 공급망 재편으로 국내 수출 여건은 나빠질 수 있지만 그런 와중에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은 더욱 늘어 투자도 어려워질 것이다. 가계도 기업도 정부도 장기 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다. 최근 10년물 국채금리 상승은 새로운 경제 환경을 맞이할 준비가 됐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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