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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정민정 디지털전략·콘텐츠부장

이-팔 여론전의 최전선 부상한 SNS

가짜뉴스 대거 유통하며 진실 왜곡

국내선 괴담 선동정치로 선거 개입도

'탈진실 시대' 가짜 구별하는 지혜 절실

정민정 디지털전략·콘텐츠부장




최근 X(옛 트위터)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텔레그램 계정에 올린 영상이 화제가 됐다. ‘시오니스트(이스라엘을 지칭)에 살해당한 어린이 장례식’이라는 제목의 이 영상에는 부상당한 아기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지켜보던 취재진도 긴박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촬영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병원 관계자가 사망한 아기를 천으로 감싸 보호자에게 넘기고 보호자는 슬픈 표정으로 아이에게 입을 맞춘다. 하지만 천에 싸인 아이는 소녀가 아닌 인형이다. 가짜 뉴스(fake news)다. 앞서 틱톡에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주장과 함께 공문서 사진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는 7월 미 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작성한 백악관 내부 문건을 임의로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에서 가짜 뉴스가 쉴 새 없이 쏟아지며 지상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허위 정보 모니터링 플랫폼인 사이아브라에 따르면 하마스 공격과 관련된 정보를 퍼다 나르는 소셜미디어 계정 5개 중 1개는 가짜라고 한다.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점은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려 누구나 손쉽게 가짜 뉴스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상전만큼이나 여론전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여기에 편승해 확성기 노릇을 하고 있다. 지구촌은 둘로 쪼개져 상대방을 향한 저주와 증오를 쏟아내고 이 과정에서 가짜 뉴스는 가성비 좋은 탄환이 됐다.

전쟁터 못지않게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가짜 뉴스의 폐해도 심각하다. 지난해 대선 직전 터진 ‘윤석열 커피’ 가짜 뉴스는 대장동 사업 주역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대화 내용을 왜곡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선 전날 이 가짜 뉴스를 유권자 475만 명에게 공식 선거운동 문자메시지로 발송했다. 최근 새롭게 밝혀진 ‘최재경 발언’은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 최 씨가 최재경 전 중수부장인 것처럼 속여서 대화를 꾸몄다는 점에서 더욱 죄질이 나쁘다. 배우 이영애 씨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에 5000만 원을 냈다가 가짜 뉴스에 시달리고 있다. 한 유튜브 매체가 대통령 부부와 연관돼 있다는 취지로 방송한 것이다. 이 씨 측은 허위 사실이라며 방송 중지 및 사과를 요구했지만 해당 매체는 외려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영상을 새로 올렸다.



가짜 뉴스는 우리 사회 곳곳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요사스러운 혀로 대중을 현혹시킨다. 진실에 부합하기에 사실로 믿는 게 아니라 우리 편이 믿으면 거짓말도 참말로 둔갑하는 것이다. 홍길동이 울고 갈 변신술이 아닐 수 없다. 실체적 진실이 없으니 가짜 뉴스가 사실을 대체한다. 가짜 뉴스는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공포에 사로잡힌 대중은 가짜 영웅에게 매달린다. 설상가상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딥페이크 기술은 가짜 영웅을 진짜 영웅보다 더 그럴싸하게 만든다. 탈진실의 시대가 불러온 민주주의의 위기다.

‘뉴욕타임스’ 서평 담당 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치코 가쿠타니는 저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원제: The Death of Truth: Notes on Falsehood in the Age of Trump)’에서 “우리 모두는 (합리적) 문제 제기에 지성보다는 감정으로 반응하고 증거를 신중히 검토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확증 편향의 시대’를 핑계 삼아 우리만 옳고 다른 사람은 거짓이라고 외치는 맹목과 선동, 그리고 정치적 극단주의를 질타한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저마다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파했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며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는 가짜 뉴스는 열린 사회의 적이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탈진실의 시대, ‘저마다의 의견’과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그것만이 우리 시대의 빛나는 성취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비극적인 전쟁을 끝장낼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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