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출간한 저서 ‘부동산과 정치’에서 부동산 통계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부동산114의 주간동향지수는 표본이나 분석 방법이 다르다”며 “통계학적으로 세 기관의 지수는 가격 변동에 대해 최대 2.3배 증감률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절대적으로 맞는 유일한 통계가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통계의 안정성·독립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통계 조사 방식의 한계가 있을 뿐 조작 혹은 왜곡 가능성은 없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다.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김 전 실장은 부동산원 통계 작성의 메커니즘을 알고도 이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부동산원 통계는 현장 조사원이 전국에 설정된 표본 주택의 변동률을 반영해 이를 직접 입력한다. 이들 수치는 국가 통계의 중요성을 고려해 외부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처리된다. 그런데 감사원의 ‘국가 주요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보고서를 보면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부동산원에 직접 개입했다. 현장 조사원을 어르고 달래서 이미 입력한 집값 변동률 수치를 수정하도록 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 부동산원 노조가 참다 못해 경찰 정보과에 이를 제보했는데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이 뭉갠 사실도 확인됐다.
이러다 보니 부동산 통계는 현실과 더욱 멀어졌고 ‘거짓 통계’를 악용하는 일이 판을 쳤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2020년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14% 올랐다”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에서 이를 수긍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당시 서울의 주요 아파트 가격만 비교해도 김 장관의 발언과 상당히 배치됐다.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0㎡ A형의 경우 2017년 7억~8억 원 하던 매매가가 2020년 12억~13억 원까지 뛰었다. 노원구 상계주공 3단지 76㎡ B형 역시 2017년 4억 원이었던 매매가가 2020년 들어 6억~7억 원으로 급등했다.
정부가 ‘희망사항’과 같은 변동률을 지속해서 들이밀자 참다 못해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가 직접 나서 제동을 걸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는 KB부동산의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를 기준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 값은 52% 올랐다”며 정부와 맞섰다.
김 전 실장은 저서에서 부동산 정책의 실패 원인과 한계 등을 상세하게 적었다. 일종의 ‘징비록’인 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소셜미디어에 “그와 나의 소회가 같다”고 호응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반성과 제언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더 통렬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죽비를 맞더라도 통계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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