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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파맛 ‘첵스’와 여론 조작

김경미 여론독자부 차장


농심켈로그는 2004년 자사의 시리얼 브랜드 ‘첵스’ 홍보를 위해 ‘첵스초코나라 대통령 선거’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당선이 되면 초콜릿 맛이 더 진한 첵스를 내겠다는 1번 후보와 파 맛 첵스를 내겠다는 2번 후보가 출마했다. 회사는 당연히 1번의 당선을 기대했을 테지만 결과는 달랐다. 장난기가 동한 누리꾼들이 2번에 몰표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결국 매크로(특정 작업을 반복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등을 통한 중복 투표를 무효 처리한 끝에야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이 이야기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두고 ‘답정너(정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식으로 접근하면 큰코다칠 수 있다는 마케팅적 교훈을 준다. 굳이 교훈을 추가한다면 ‘안일한 이벤트는 역풍을 맞기 쉽다’ 정도일 것이다. 해석은 딱 거기까지여야 한다. 만약 농심이 투표 결과를 두고 회사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경쟁사의 여론 조작이라고 화를 낸다거나, 사람들의 입맛이 초콜릿보다 대파를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해석했다면 상황이 우스워졌을 것이다.

최근 항저우 아시아게임 기간 포털 다음이 진행한 응원 이벤트가 논란이 됐다. 축구 한중전 당시 중국이 받은 ‘응원 클릭’이 92%로 한국(8%)를 압도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진상은 빠르게 밝혀졌는데 역시 매크로가 문제였다. 응원 페이지가 로그인 없이도 무제한 클릭이 가능한 탓에 누군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중국 응원을 수천만 번 눌렀고 결과는 왜곡됐다. 실제 로그인을 하도록 한 네이버 응원 비율은 한국 94%, 중국 6%였다.

다음이 로그인을 제한하지 않은 것은 이벤트 참여자를 부풀려 보이게 하려는 전략으로 짐작된다. 로그인 요구가 참여율을 떨어뜨린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복 투표도 사람 수가 많아 보이게 하는 데는 유효하다. 이런 시도도 물론 비판받을 일이지만 딱 거기까지다. 여론 조작 운운하며 “반사회적 전복 시도”라거나 “국기 문란의 중범죄”라는 건 너무 나갔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가짜와 조작에 대한 공포는 커지고 있다. ‘가짜 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전쟁을 선포한 정부의 의중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런 헛소동까지 여론 조작·왜곡 운운하며 ‘범부처 태스크포스(TF)’ 구성까지 한다는 건 아무래도 과하다. 이래서야 정부의 선한 의도보다는 ‘포털 길들이기’에 대한 의심만 자꾸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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