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투병으로 휴직 중인 경찰관이 우연히 들른 은행에서 눈썰미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을 잡아냈다.
29일 경찰청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한 은행에서 보이스피싱 현행범이 검거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올라왔다. 사건은 지난 3월31일 오후 3시께 한 은행 자동화기기 코너에서 벌어졌다. 충북 청주상당경찰서 소속 정세원 순경은 보이스피싱을 수사하는 지능범죄수사팀에서 근무했다가 같은 날 수상한 30대 남성 A씨를 발견한 뒤 예리한 촉을 세웠다.
영상에는 회색 상의를 입은 한 남성이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 자동화기기 앞을 서성이고 있다. 이 남성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입금이 오래 걸리니 먼저 하시라”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차례를 양보했다. 그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초조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남성은 정 순경에게도 차례를 양보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급하게 주머니에 넣었다.
정 순경은 이때 수상함을 느꼈다. 정 순경은 자신의 지갑에서 공무원증을 꺼내 자신이 경찰임을 알리고 “어디에, 얼마나 입금하시는 건가요?”, “텔레그램으로 지시받고 일하시는 건가요?” 등 질문 세례를 이어갔다. 이어 정 순경은 가방 속을 탐문했다. 가방 안에서 발견된 건 현금 1700만원이 나뉘어 담긴 세 개의 봉투였다.
A씨는 상황이 난처해지자 “나는 잘 모르니 담당 직원이랑 통화해 보라”며 휴대전화를 넘겼다. 정 순경이 통화를 넘겨받자 수화기 너머 인물은 “금 거래를 하는 거라 이런저런 돈을 입금한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정 순경이 어느 거래소냐고 재차 묻자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확신한 정 순경은 즉시 112에 전화해 신고했다. 그는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말을 걸며 현금수거책 A씨가 도주할 수 없도록 붙잡은 뒤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인계했다.
정 순경은 대장암으로 휴직한 상태에서도 망설임 없이 범인 검거에 앞장선 것이다. 영상 속 모습만 봐도 항암 치료로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정 순경은 “마땅히 경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경찰은 이 남성으로부터 1700만원을 회수해 피해자에게 무사히 돌려줬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정 순경이 병마를 물리치고 다시금 힘차게 경찰관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응원해 주시길 부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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