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강간죄의 명칭을 '비동의성교죄'로 바꾸고 성범죄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통과된 가운데 일본에서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됐다.
앱 이름은 '키로쿠'.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로드한 뒤 동의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동의'를 누르면 QR코드가 생성된다.
이 QR코드는 상대방과 서로 공유할 수 있으며 앱에 자동으로 저장돼 기록으로 남는다.
개발사는 "성적 동의서를 작성하기 위해 종이에 이름을 적고 날인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다"며 "전문 변호사의 감수까지 마쳤기 때문에 법적 다툼에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출시를 앞두고 오히려 앱을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강제로 성행위에 동의했다는 기록을 남겨 범죄자가 처벌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려가 쏟아지자 개발사는 결국 앱 출시일을 이번 달 25일에서 올해 안으로 연기했다.
개발사는 "악용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도록 보안 기능을 강화하고, 강제적인 동의가 기록됐을 때 구제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 기능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은 지난달 13일부터 '부동의 성교하면 처벌하는 법'을 시행 중이다.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했을 경우 일본 형법 제177조에 따라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성범죄에 미온적인 일본에서 이처럼 법률 개정이 이뤄진 것은 2019년 네 건의 성폭행 무죄 판결이 계기가 됐다. 당시 나고야지방재판소는 “피해자가 현저하게 저항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며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법 개정 요구 시위가 이어졌다.
폭행이나 협박뿐 아니라 술이나 약물 섭취, 수면 등으로 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오랜 학대를 당했거나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경우 등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된 경우에 적용된다.
피해를 당한 후 바로 고소하기 어려운 성범죄의 특성을 고려해 공소시효도 기존보다 5년 더 연장하고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성행위에 대한 동의를 판단할 수 있는 나이도 현행 ‘13세 이상’에서 ‘16세 이상’으로 높여 동의가 있더라도 16세 미만과 성행위를 하면 처벌하기로 했다.
세계적으로 '동의 없이 이뤄진 성행위는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점차 높아지며 이를 법제화하는 각국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해 8월 스페인이 '합의 없는 성관계는 모두 강간'이라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한 유럽연합(EU) 대열에 합류했다.
현재 유럽 내에서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한 나라는 독일과 벨기에, 덴마크 등 13개국이다.
유럽 뿐 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성적 침해를 강간죄 등으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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