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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슈퍼스타’ 독일이 빠진 함정

전 세계의 부러움 사던 ‘제조강국’ 獨

과거 성공 때문 ‘휴브리스 함정’ 빠져

어떤 강자도 혁신 없인 도태 불가피

韓도 반도체 강국 위상 안주 말아야





“지난 10년 동안 독일은 ‘유럽의 병자’에서 ‘경제 챔피언’이 됐습니다. 이 성공이 새로운 리스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2016년 6월, 독일 알리안츠그룹의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한창 잘 나가던 독일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글을 보냈다. 세계 최강의 제조 경쟁력과 안정적인 경제 모델, 2002년 노동 개혁의 장기적 성과로 독일이 전 세계의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던 때였다. 그해 독일 무역수지는 역대 최대인 2700억 달러 흑자를 냈고 주요 선진국 중 최고인 2.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독일인의 86%는 국가 경제의 앞날을 낙관했다.

WSJ에 실린 기고문의 요지는 독일은 성공에 취해 변화를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개혁과 경쟁력 제고 없이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독일 경제는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승자를 향한 뻔한 훈수로 들렸겠지만 경고는 이내 현실이 됐다. 올해 독일 경제는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는 2001년 이후 가장 적은 규모에 그쳤다. 독일 기업들은 경영 여건 악화를 이유로 앞다퉈 본국을 떠나고 있다. 독일 경제의 ‘척추’인 중소기업, 일명 미텔슈탄트(mittelstand) 네 곳 중 한 곳이 해외 이전을 검토 중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독일이 약 20년 만에 다시 ‘유럽의 병자’가 될 처지로 몰리는 것이다.

독일 경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러시아와 중국의 역할이 컸다. 주로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값싼 에너지와 고도의 자국 기술력으로 만든 제품을 중국 등에 비싸게 수출하는 독일의 경제 모델이 러시아발(發) 에너지 위기와 최대 수출국 중국의 경기 악화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외부 악재가 터지자 오랜 골칫거리였던 기술 인력 부족과 관료주의 등 독일 경제의 구조적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의 밑바탕에 깔린 진짜 문제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해버린 독일의 ‘안일함’과 혁신의 부재다. 7년 전 경고대로다. ‘경제 슈퍼스타(economic superstar)’였던 독일은 개혁과 변화·도전보다 안정과 현상 유지를 원했다. 심상치 않은 국제 정세에도 러시아 에너지에 주로 의존했고 수출의 중국 쏠림에도 손을 쓰지 않았다. 혁신과 디지털화에도 늑장을 부렸다. 현재 독일 기업의 82%가 여전히 팩스를 사용한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 투자 비율은 지난해 0.25%로 미국(0.78%)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내연기관차의 성공 공식을 고집하느라 전기차의 대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독일의 대표 기업 폭스바겐은 2008년 이후 줄곧 지켜온 중국 시장 자동차 판매 1위 자리를 올해 중국 전기차 업체 BYD에 내줬다. 미국의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국가적 자존심의 원천이었던 자동차 산업이 독일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현실은 과거 명성을 날렸던 또 하나의 제조 강국 일본 경제의 몰락 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고품질·고성능·고부가가치의 대명사였던 ‘메이드 인 재팬’의 성공 공식을 과신한 일본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 방식만을 고집하다가 시대의 흐름을 놓치고 무너졌다. 수요는 무시한 채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데 집착하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 일명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 정신이 일본 제조업을 망쳤다는 비판과 자성이 쏟아졌다. 성공을 맛본 두 나라 모두 스스로를 과신하다가 오류에 빠지는 ‘휴브리스(hubris·오만) 함정’의 제물이 된 것이다.

한국도 이 같은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디지털 강국’이라는 자부심에 빠져 있느라 주춤한 사이 세계의 첨단 인공지능(AI)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 AI지수 순위는 지난해 5위에서 올해 7위로 미끄러졌다. 세계 최고 반도체 매출을 자랑하던 삼성전자는 4분기째 대만 TSMC에 1위를 내주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 제조업 부활에 시동을 걸고 있다. 우리가 ‘반도체 강국’의 위상에 안주하는 순간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어떤 강자도 과거의 성공 공식에 안주하는 순간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혹독한 글로벌 경쟁에서 지켜야 할 유일한 성공 공식은 꾸준한 혁신 마인드와 개혁 의지를 잃지 않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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