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 딸을 죽인다. 그리고 아내는 딸의 복수를 위해 남편을 죽인다.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본 또 다른 딸은 복수를 위해 그 어머니를 죽인다. 복수는 계속해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이 불안한 집은 결국 무너져 내린다.
국립극단의 올 하반기 최대 기대작 ‘이 불안한 집’이 8월 31일 개막한다. 11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스튜디오 하나에서는 개막을 앞두고 국립극단 연극 ‘이 불안한 집’의 연습실 공개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서는 1막 시연과 함께 김정 연출과 15인의 출연진과의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연극 ‘이 불안한 집’은 아이스퀼로스의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원전으로 하는 동명의 영국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 2016년 영국에서 초연된 원작은 그리스 비극에 현대적 해석을 잘 버무려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호평받았고 스코틀랜드 비평가협회 최우수 희곡상·연출상·여자 최우수 연기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김 연출은 “원작인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관객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호흡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 작품의 매력”이라며 “원작이 2023년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전달하고, 철학적 사유가 가능케 할 것”이라고 전했다.
작품의 러닝타임은 무려 5시간이다. 작품 중간에 휴식시간도 있을 정도다. 영국 초연 때도 너무 긴 호흡에 3부가 다 따로따로 공연된 적이 있을 정도다.
1·2부는 원전인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플롯대로 극이 진행된다. 그러다 갑자기 극은 3부에서 현대로 넘어오게 된다. 김 연출은 “1·2부와 3부 간의 연결고리를 잘 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1부가 신들의 지배, 운명과 세상에 대한 저항을 다루고 2부가 개인적 자유를 다룬다면 3부는 현대로 넘어와 개인적 트라우마와 자신을 억압하는 기제가 무엇인가를 다룬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동시대성은 사회적 억압이 개인적 트라우마를 유발시킨다는 메시지에서 찾을 수 있다. 김 연출은 “3부가 극 전체를 감싸고 있다”며 “이 연극이 이성 과잉의 2023년 한국 한복판에서 공연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드릴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원전과 다른 부분도 있다. 서사의 중심 인물이 아니었던 엘렉트라가 드라마의 중심에 서게 된다. 2부에서는 오레스테스와 함께 어머니를 살해하는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3부에서는 자신이 엘렉트라라 믿는 인물의 트라우마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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