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는 모든 지휘자들의 꿈이다. 만일 그곳을 지휘해달라는 제안이 엉뚱한 이에게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다가 그 사람이 아버지라면.
영화 ‘마에스트로’는 2011년 프랑스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꼬장꼬장 슈콜닉 교수의 남모를 비밀(Footnote)’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탈무드 율법을 연구하는 부자(父子)를 다룬 원작을 지휘자들의 이야기로 고쳐 썼다.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코다’의 제작자 필립 루슬레가 참여해 다시 한 번 음악을 매개로 연결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프랑스 문화부에서 수여하는 빅투아르 상을 받는 등 지휘자로서 명성을 쌓고 있는 ‘드니 뒤마르(이반 아탈)’. 드니는 앞서 40여 년 간 지휘에 몸담은 아버지 ‘프랑수아 뒤마르(피에르 아르디티)’에게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다. 어느 날 프랑수아는 라 스칼라 극장으로부터 음악 감독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알린다. 아버지에게 열등감을 느낀 것도 잠시, 드니는 라 스칼라의 제안이 잘못 전달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프랑수아와 드니의 관계는 애증으로 점철되어 있다. 음악인으로서 자존심 싸움도 벌어진다. 드니는 떠오르는 차세대 주자이지만, 프랑수아는 점차 커리어의 뒤안길을 걷고 있는 노장이다. 아들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아버지의 영역은 좁아진다. 드니는 프랑수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음악을 시작했다고 고백할 만큼 그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다. 프랑수아를 향한 경의와 동정, 두려움이 뒤섞이는 까닭에 드니는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다.
영화 곳곳에 자리잡은 클래식 음악은 인물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실마리가 된다. 아들의 빅투아르 상 수상 이후 프랑수아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하며 초조한 마음을 드러낸다. 프랑수아와 솔직한 마음을 터놓은 드니는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지휘하며 진정한 예술의 경지에 빠져든다. 이밖에도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14번과 브람스의 간주곡 7번 등 음표를 통해 두 지휘자의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랑스의 국민 배우로 꼽히는 이반 아탈과 피에르 아르디티의 절제된 연기가 부자 관계의 드라마를 강조한다. 실제 외관으로도 닮은 인상을 풍기는 탓에 이들의 관계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아탈은 역할을 위해 실제로 지휘자를 만나 지휘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드니와 프랑수아의 지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른데, 보다 솔직하고 불꽃 같은 프랑수아의 지휘와 정적이면서도 힘이 있는 드니의 지휘를 비교하는 것도 영화의 재미다.
누구보다 닮았지만 그렇기에 멀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라 스칼라의 지휘를 통해 부자는 비로소 마음의 벽을 허문다. 아버지를 지나고서야 아들의 새로운 장이 시작될 수 있다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88분.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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