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 방송사들이 최근 러시아 벨고로드주에서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부대가 군사훈련을 받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영해 각국의 외신들이 잇따라 보도했다.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여성의 군대 지원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러시아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심지어 벨고로드 향토방위군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여성 모병 광고까지 올렸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최후의 수단이라던 ‘여성 모병’까지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와 17개월째로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이미 조국을 방어하기 위해 전장에 나선 여군이 4만 명에 달할 정도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러시아군 참호를 습격하는 여성 우크라이나 군인의 놀라운 보디캠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우크라이나 여군의 전투 모습을 자세히 보도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내쫓기 위한 대반격을 시작하면서 최전방에서 전투를 펼치는 우크라이나 여군 병사의 모습이 포착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여군은 전체 병력의 15%를 차지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실제 전쟁이 터지고 장기화되면서, 병력 부족의 해결책으로 여군 활용 카드를 공통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사실 각종 첨단 무기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대전에서는 지상전의 경우 수적 우세는 무시할 수가 없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북한과 맞대고 있는 분단 국가인 한국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한국국방연구원(KIDA) 조관호 책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병역자원 감소 시대의 국방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병력은 48만 명으로 50만 대군의 벽이 무너졌다. 2018년에 60만 명대에서 5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불과 4년 만이다. 북한군 상비군은 118만명 수준으로 우리 군은 북한의 40%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조 연구위원은 향후 10년간 평균 47만명 선을 유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징병제인 육군 기준 병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유지하고 간부 규모와 현역판정비율, 상근·보충역 규모를 현재와 동일하게 유지한다면, 15년 후인 2038년에는 39만6000명을 기록하며 40만명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 시기가 되면 국군은 병사(19만6000명)보다 간부(20만명)가 많은 군대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우리 군의 병력 급감은 저출생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가 직접적인 이유다. 상비병력 50만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년 22만명을 충원해야 한다. 하지만 KIDA가 주민등록인구와 생존율 자료를 토대로 연도별 20세 남성 인구를 추산한 결과, 2036년부터 20세 남성 인구는 22만 명 아래로 떨어지고, 지난해 출생한 남아가 20세가 되는 2042년에는 12만 명까지 급감하게 된다. 저출생에 따른 병역 자원 급감이라는 불안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불과 10여년 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병역 자원 수급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는 만큼 상비병력을 50만명으로 유지하는 것이 적정한 지는 물론 줄어드는 병력 자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적정 병력을 확보해야 하는 군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선뜻 대책을 내놓기도 못하고 있다. 병역에 민감한 국민정서와 가공할 파급력 탓이다. 자칫 사회적 혼란과 갈등만 유발할 수 있어 국방부로서는 여론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당장 군은 ‘국방혁신 4.0’에서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과학기술강군 육성으로 병역 자원 감소에 대비한다는 생각이지만, 저출생의 시대를 극복하기에 충분할지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까지 나온 대책으로는 크게 세 가지다. 모병제 본격 도입과 여성 병력 확대(여성 징병제), 현역 복무기간 연장이다. 대체복무 폐지와 민간 인력 채용도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모병제는 인적자원의 효율적 운용과 전문성 제고, 국민의 병역부담 감소와 자발성 극대화가 장점이다. 따라서 현재의 군 의무징집제를 ‘완전 모병제’로 전환해 상비군을 30만 명 선으로 유지하자는 것이 대안으로 가장 많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2040년 예상되는 인구 구조로는 10만~20만명의 모병제 병력 확보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많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모병제 도입 및 징병제 재도입 국가 비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모병제를 위한 가장 중요한 건 목표한 병력 충원과 예산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모병제 전환 이후 목표로 하는 병력의 70%밖에 충원하지 못해 군사력 약화 문제가 발생했다. 독일도 2025년까지 20만 3000명 수준을 목표로 했지만 2022년 5월 현재 18만 4000명에 불과하다. 해마다 새롭게 충원하는 병력도 2017년 2만 3000명, 2018년 2만명 등으로 점차 감소하는 상황이다. 스웨덴 역시 2010년 당시 모병제를 통해 매년 5300명을 모집하고자 했지만 실제 지원자는 2400명에 불과해 병역 부족에 시달린 끝에 결국 2018년 징병제로 되돌아갔다. 보고서는 각국이 모병제로 전환한 뒤 병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많고, 모병제로 도입하면 수조원에서 수십조원까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지적했다. 또 병사들의 월급 인상과 숙련 기술 보유자 충원 비율 등을 고려해 추가 예산과 고학력·전문인 기피 등 우수 인재 획득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나마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모병제 비결은 ‘제도와 혜택’이다. 군 제대자에 대한 취업가산점과 학자금·주택대출제도, 무상의료 등 파격적인 혜택이 군대에 가려고 대기까지 흐름이 생기면서 미국 모병제를 유지시키고 있다. 우리도 완전환 모병제로 전환하려면 미국 같은 과감한 예산 지원과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 정서도 괜찮다. 국민 절반 가까이가 병사 봉급을 인상해 지원자로만 군대를 구성하는 모병제 도입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최근 발표한 6월 4주차 전국지표조사(NBS·National Barometer Survey)에서 모병제 도입 관련 ‘찬성한다’는응답이 49%로 ‘반대한다’ 42%보다 7%p 앞섰다. 긍정적 반응이 더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병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각국의 사례를 고려해 현재의 징집병 제도를 유지하면서, 3년 복무의 ‘유급 지원병 제도’ 처럼 모병제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많다. 징집제는 그대로 두고 부분적으로 모병제를 도입하는 것이 병역자원 확보 측면에서 실효성이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성 징병제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젠더’ 이슈와 겹쳐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병역에 남녀를 구분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남녀평등 차원에서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여성 모병제를 주장한다. 현재 간부에 국한된 여성 군인을 병사로도 복무하도록 문호를 넓히자는 것이다. 제도가 없어 지원하지 못할 뿐 병사로 복무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현역병 복무를 원하는 여성에게 기회를 제공하면 남녀 평등 차원에도 부합한다는 논리다.
국민 정서는 부정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4.9%가 여성 징병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36.3%가 ‘찬성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특히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의 의무 복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유럽 국가 노르웨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국 중 최초로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결정했고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물론 처음에는 노르웨이에서도 여성 징병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각 정당의 찬성론자들은 여성 징병제가 성 평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며 여성계를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주도했다. 특히 사회주의 계열 소속 여성 정치이들이 주도했다. 군대가 노르웨이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 중에 하나이며, 그 힘이 남자에게만 허락된다면 이는 노르웨이가 추구하는 평등이라는 기본적 원칙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2013년 6월 노르웨이 의회는 성 중립적 징병제를 위한 결의안을 승인했다. 이후 노르웨이 의회는 2014년 10월 성 중립적 징병제를 반영할 수 있도록 병역법(vernepliktsloven)과 국토수호법(heimevernloven)을 수정해 여성 징병제는 2016년 시행됐다. 이에 따라 매년 19세가 되는 남성과 여성 약 6만여명이 복무 대상자가 됐다. 다만 징병대상자 중 능력과 동기 등을 고려해 군이 필요로 하는 약 8000명 정도만 선발해 징집한다. 징병 대상자가 되더라도 학업 등 이유로 징병을 회피할 수 있다.
반면 세계 최강 군대를 보유한 미국은 여성 징병제 도입에 실패했다. 미국 사회 전체의 최종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탓이다. 미국은 현재 모병제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징병제는 1973년에 폐지됐다. 다만 만 18세 이상 남성은 군 의무병역시스템(MSSS)에 등록해 유사시 징병에 응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이라며 대안으로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현역 복무기간 연장이다. 현재 병사 복무기간은 육군·해병대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1개월이다. 현재 제도가 유지된다면 저출산 탓에 2035년 이후엔 매년 2만 명 수준의 병력 축소가 불가피해 복무기간을 8개월에서 21개월 또는 24개월 등으로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감축한 복무기간을 다시 연장하거나 거세 반발을 살 수 있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 군 안팎의 지배적인 견해다. 정치권도 국민 정서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3년이 넘었던 육군 복무기간을 18개월까지 줄였는데 이를 다시 늘린다는 건 정치적 자해행위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이 ‘복무기간 연장’을 공약으로 내놓을 없을 것이다.
그나마 예산도 필요 없는 대체복무 폐지가 실현 가능성이 높다. 군 당국도 저출산으로 병역 자원 감소로 대체복무제 폐지가 불가피하다며 긍정적 입장이다.반면에 대체복무제를 활용하려는 청년들과 관련 업계는 국가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체복무제는 산업체나 대학에서의 근무로 군 복무를 대신하는 제도다.
필수 인력만을 군인으로 채우고 민간 인력을 채용하는 해외 사례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당장 우리의 동맹 미국이 그렇다. 미군은 상비병력 대비 절반 정도 규모의 민간 인력을 공무원과 군무원, 민간업체 위탁 등을 통해 확보하고 있다. 물론 우리 군도 획득 부분에서는 방위사업청을 위시로 하는 공무원 등을 채용하고 정비 분야에서는 군무원을 채용하지만, 미군의 민간 인력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부대 경비 인력과 병력·장비 수송에까지 민간 인력을 배치한다. 심지어 전투에서도 민간군사기업(PMC)를 활용한다. 후방지원과 전략·운용·조직상의 자문 및 병력 훈련 등의 군사자문, 직접적인 전투행위 대행, 야전부대의 지휘·통제 등 실전과 관련된 서비스까지 군사공급의 전 단계에 활용한다.
유럽에서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면서 서유럽 국가를 시작으로 모병제로 전환하는 흐름이 강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뒤바뀌고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은 징병제 재도입 논의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2013년 10월 모병제 전환을 결정했다가 2014년 러시아 침공 직후 징병제를 재도입했다. 2008년 모병제를 도입했던 리투아니아도 2015년에,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던 조지아는 모병제로 전환한 지 7개월 만인 2017년에 재도입했다. 2010년 모병제로 전환했던 스웨덴 역시 2018년에 징병제를 재도입했고, 프랑스와 독일 또한 징병제 재도입을 논의가 최근 진행되고 있다.
현 정권에서는 모병제와 여성 징병제, 복무연장은 힘들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에 병력 개편에는 공감하면서도 임기 내 모병제 추진에는 일단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장기적으로 20년 정도 지나면 모병제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2의 창군 정신으로 ‘국방혁신 4.0’을 추진해 과학기술 강군 건설로 병력은 줄이면서 국방력은 증가하는 고효율 국방 체계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줄어드는 병역자원을 고려해 병력 구조를 사람에서 로봇 중심으로 바꾸는 무인전투체계 구축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여성 징병제와 현역 복무기간 연장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