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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없는 정부 '산재예방' 컨설팅…中企, 무방비로 처벌 받을판

[중대법 확대 D-6개월-위기의 기업들] <하>준비없는 중대법은 ‘재해’

폐업·창업 고려땐 3년도 더 걸려

先자율·後책임 예방체계 바꿨지만

기업 자율체계 적용범위 애매하고

노동계 "근로자 책임 부각" 반발

중대법 개선 TF 역시 감감무소식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이행점검 전체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고용부




“중소기업 현장을 가보면 아직 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곳이 너무도 많습니다. 내년 폐업을 결정하거나 자포자기할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경영계의) 우려가 실감이 날 정도입니다.”(고용노동부 관계자)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확대 시행(50인 근로자 사업장·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 건설 현장)되면서 기업뿐만 아니라 이 법의 담당 부처인 고용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동안 고용부는 중대재해법 수사권이 있지만 처벌 조항을 예방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법 제정 취지가 사업주에 대한 처벌보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업 스스로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1일 고용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난해부터 적용 대상 기업을 1회 이상 현장 방문해 사고 위험 요인 파악, 근로자 참여 방법 등의 컨설팅을 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새로 법 적용을 받게 될 63만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 진행되는 속도를 감안하면 연간 20만 곳 정도가 컨설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고용부의 계산이다. 최소 3년은 지나야 중소기업들에 대한 현장 방문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중소기업들은 그동안 중대재해법 처벌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도 다른 변수가 없을 경우다. 중간에 폐업하거나 새로 생겨나는 기업이 나타날 경우 기간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 목표도 중소기업이 폐업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세웠다”며 “만약 방문 중소기업이 폐업하거나 창업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법 적용 대상 기업을 모두 방문해 컨설팅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직접 찾아가는 것은 기업 스스로 기초적인 안전 상시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언제든 인명 사고가 일어나 사업주가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처벌 사고를 보면 대부분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며 “안전시설, 보호구, 관리 감독 중 하나라도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올해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선(先)자율·후(後)책임’ 체계로 바꿨다. 기업 스스로 규모·업종, 근로자에게 맞는 자기 규율 예방 체계를 유도하는 것이 골자다.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위험 방지 및 예방 조치를 제대로 했다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로벤스 보고서로 유명한 영국을 비롯해 독일·일본·미국 등 산업안전 선진국은 이미 노사 스스로 사고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했다. 그 결과 영국은 1970년대 연간 800명대이던 사망 산재를 200명대로 확 줄였다. 세계적인 산업안전보건 분야 권위자인 유카 타칼라 전 유럽연합(EU) 산업안전보건청장은 지난해 4월 한국을 방문해 진행한 강연에서 “(산업 구조 등) 근본적인 문제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형사처벌을 한다고 (산재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며 “(중대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우수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업이 자기 규율 예방 체계의 적용 범위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정부의 안전 인증을 받으면 ‘우리가 안전한 사업장이겠구나’ 하는 식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예방 체계를 어느 선까지 만들어야 사고가 발생해도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노동계의 반발도 과제다. 노동계는 정부의 행보에 대해 사업주의 책임보다 근로자 책임을 부각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사고 책임을 사실상 기업 자율로 맡기는 식으로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한다.

기업들은 중대재해법을 실현 가능하고 현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확대 시행전까지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중대재해법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개선안을 발표하겠다고는 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당초에는 올해 상반기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지금은 연내에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논의를 통해 개정안이 마련되더라도 본회의 통과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야당은 중대재해법을 개정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되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중대재해법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의 강화 안들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경영계에서는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의 유예가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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