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유일의 민주국가’인 이스라엘에서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 권한을 폐지하는 법안이 끝내 통과되면서 미증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추가 사법 개혁에 대한 합의를 제안했지만 집권 연정과 야당·시민사회 간 신뢰는 이미 깨진 분위기다. 현재의 분열이 1948년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하다는 평가까지 나오며 이스라엘의 경제·외교·안보 전 분야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24일(현지 시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의회(크네세트)의 기본법 개정안 표결 이후 진행된 TV 연설에서 “휴회 기간, 나아가 11월까지 모든 것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2차 사법 정비 합의를 제안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때때로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지지하는 등 극우 가치에 반하는 결정들을 내렸는데 극우 성향의 현 정부는 사법부가 ‘선출 권력’을 억제해서는 안 된다며 올해 초부터 사법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행정부의 주요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대법원의 권한을 폐지하는 내용이다. 이 밖에 대법관 임명 권한을 사실상 의회에 넘기고 의회가 대법원의 위헌 결정을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계획들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이스라엘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이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야당이 표결을 보이콧하고 경제 단체, 유력 인사 등 각계각층에서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집권 연정이 과반 의석(120석 중 64석)을 내세워 법안을 단독 처리했기 때문이다. 야권을 대표하는 야이르 라피드 전 이스라엘 총리는 “야당은 의미 없는 보여주기에 불과한 협상의 파트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리에서는 표결 이후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몰려 나와 경찰과 대치해 최소 19명이 체포됐다. 29주째 이어진 반대 시위에 참가한 인원은 전체 인구의 5%인 5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대표 강소국으로 꼽히는 이스라엘의 국력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최대 동맹인 미국이 백악관 성명을 통해 “표결이 가능한 가장 적은 수의 찬성으로 진행된 것은 유감”이라고 밝히며 후속 합의를 압박했다. 전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예비군 1만 명 이상이 복무 거부를 선언해 안보 구멍도 우려된다. 한 조사에서는 521개 기업 중 70%가 사법부 무력화로 인한 사회불안 때문에 일부 사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대표 주가지수인 ‘텔아비브125’는 이날 2.32% 빠졌고 통화가치도 달러 대비 1%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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