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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칼럼]핵무장론과 핵무장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실존적 北 위협에 핵무장론 힘받지만

실제 감행땐 워싱턴선언 등 합의 파기

동맹 훼손으로 美 안보 보장 약화 불러

결국 연합훈련 중단·미군 철수로 귀결





한때는 소수 의견이었던 자체 핵무장 주장에 이제는 반수 이상의 국민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통일연구원의 연례 여론조사에 의하면 핵무장 지지 여론은 2010년 후반부터 급증하다 2021년에 71.3%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상승세를 기록하던 핵무장론이 워싱턴 선언을 기점으로 일단 수그러든 추세다.

통일연구원의 올해 6월 보고서에 따르면 핵무장 지지 여론이 60.2%로 2021년의 71.3%에서 1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물론 조사 기간이 4월 중순, 즉 워싱턴 선언 (2023년 4월 26일) 이전이었기 때문에 워싱턴 선언이 핵무장 지지 여론 하락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급증하는 한국의 핵무장론이 미국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고, 미국은 이를 잠재우기 위해 확장 억제를 대폭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한국의 여론이 이런 미국의 노력에 어느 정도 반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 대부분은 워싱턴 선언으로 확장 억제가 크게 강화됐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의 핵무장론이 다시 비등할 가능성 역시 크다고 본다.

이는 미국의 확장 억제 제고 노력이 미진했기 때문도 아니고 한국인이 북한 정권처럼 ‘핵 만능론’을 맹신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확장 억제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확장 억제는 제공국이 아무리 강력한 억제력을 제공해도 수여국은 늘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혈맹이 제공하는 억제력이라도 자국의 억제력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미국 전역까지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실존적 위협을 가하고 있어서 기존 확장 억제 외에도 자구책을 강구해야 할 동인이 매우 강하다.

냉전 초 구소련의 실존적 핵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유럽 동맹국 다수가 미국의 확장 억제에도 불구하고 자체 핵무장을 고려했다. 이에 미국은 ‘핵 공유’ 개념을 도입하고 ‘핵기획(NPG)’그룹을 가동하며 확장 억제를 한층 강화하는 조처를 했다. 한국의 핵무장론도 워싱턴 선언 도출과 ‘핵협의(NCG)’그룹 출범에 일정 기여를 했다. 하지만 한국이 실제로 핵무장을 감행한다면 한미 동맹이 훼손돼 동북아시아 안보 구도가 한국에 더 취약해질 것은 비교적 자명하다.



한국의 핵무장은 우선 미국의 안보 공약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제임스 모로 교수에 의하면 모든 동맹 관계는 필연적으로 비대칭적이다. 동맹국의 국력이 비슷하더라도 완벽하게 대칭적인 동맹 관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의 안보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자율권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상충 관계)’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의 국력은 한미 동맹 체결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장했지만 한미 동맹은 여전히 비대칭 동맹이다. 워싱턴 선언은 미국의 확장 억제 강화 노력뿐 아니라 한국의 ‘NPT 준수 의무’를 명기했다. 미국의 확장 억제 강화 노력은 한국의 NPT 준수를 전제로 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이 안보 주권을 내세우며 핵무장을 감행한다면 트레이드-오프가 발생할 것이고 이는 미국의 안보 보장 약화로 귀결될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무엇보다 동맹의 신뢰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것이다. 워싱턴 선언뿐 아니라 한미 원자력협정 등 한미 동맹의 근간이 됐던 합의를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2만 8500명의 주한미군이 실효적인 인계철선이라는 미국의 믿음을 흔드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국의 핵무장은 “한국의 방어는 이제 한국에 맡기자”는 미국 내 정치 세력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이고, 이는 미국 전략자산 전개와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및 중단,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이 직면한 안보 위기를 감안하면 한국의 핵무장론은 충분히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핵무장론은 미국의 안보 보장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이 핵무장을 실제로 감행한다면 한국의 안보는 오히려 더 취약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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