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와 가죽, 털과 기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온순한 동물 양. 헌신과 희생의 상징인 양과 같은 삶을 칠십 평생 살아왔으면서도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서 유명한 양고기 식당 ‘램랜드’를 운영하는 임헌순(69·사진) 대표 이야기다.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는 대박 맛집, 양고기의 본향인 중동 관광객들도 일부러 찾는 식당의 대표를 만났다. 성공의 비결도 궁금했지만 그가 책을 펴냈다는 소식에 더 끌렸다.
7일 만난 임 대표는 신간 ‘인생학교 램랜드’를 전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가게에 나와 일하면서, 손님들과 만나면서 배우는 게 너무 많아 그냥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써보니까 정말 재밌더라고요.” 대필 작가도 없이 직접 꾹꾹 눌러쓴 책에는 그가 살아온 인생과 삶을 대하는 자세, 그 속에서 얻은 교훈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초등학교만 마치고 열네 살 나이에 식모살이로 세상에 나와야 했던 임 대표는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그렇게 양장점 종업원, 화장품 외판원, 마트 어묵 판매원으로 힘겹게 일했지만 그는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실제 임 대표는 마트의 어묵 매장에서 일할 때 자사 상품을 다 팔고 나면 가운을 벗고 옆 회사 어묵 판매를 도왔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긍휼, 배려와 나눔의 정신’이라고 여겼다. 식모살이를 할 때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천자문 책을 사달라고 부탁해 한자를 깨쳤고 양장점에서 영어 쓸 일이 많이 있자 독학으로 공부했다. 오후 9시 넘어 퇴근한 후에도 문고판 책을 사서 읽고 또 읽었다. 임 대표는 책에서 ‘여느 친구들처럼 공부를 해 학위를 받은 것은 없었지만 일을 하면서 책을 가까이한 그 시간들은 내게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가르침을 얻은 곳이 바로 지금 운영하는 식당 ‘램랜드’다. “언젠가 식당 일을 하다 병이 생겨 한동안 출근을 못 한 적이 있었어요. 조금 나은 후에 다시 나왔는데 손님들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보니 몸에 생기가 도는 거예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구나 했죠.”
그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삶의 지혜를 배운다. 부하 직원에게 인신공격을 하는 상사, 직원 12명을 데려와 10인분을 주문하고는 서비스를 달라는 상사를 보면서 너그러운 마음과 서로 존중하는 자세를 되새겼다.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에 전골에서 병뚜껑이 나왔다며 돈을 못 내겠다는 진상 손님도 있지만 음식에서 나온 철수세미 조각을 계산을 다 치른 후에 조용히 건네면서 ‘앞으로는 조심해달라’는 손님을 만나 ‘세상은 살 만하다’고 새삼 느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장사가 잘 되지 않을 때 단체 손님을 20명이나 예약해주셨던 평창동 할아버지로부터는 베풀며 살아가는 순리를 배웠다.
책 제목대로 ‘인생학교 램랜드’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 임 대표는 나눔의 기쁨을 실천하고 있다. 몽골학교와 선교사, 탈북민, 연탄 살 돈이 없는 동네 주민, ‘사랑의열매’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을 알게 되면 조용히 손을 내민다. ‘명품 옷 사 입는 셈 치고 기부한다’는 임 대표. 입고 있던 니트를 가리키면서 “이거 시장에서 1만 5000원 주고 산 건데 예쁘지 않나요”하며 웃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