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중과세를 추진하던 때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노총각 직장인이 이 소식에 결혼을 미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예비 신부에게 자신을 만나기 전 대출을 받아 사둔 작은 집 한 채가 있는데 마침 자신도 주택을 한 채 보유하고 있어 졸지에 2주택자가 된다는 게 결혼을 늦추려는 이유였다. 결혼으로 2주택자가 되면 양도세와 보유세 중과세로 세 부담이 늘어난다. 그는 “결혼을 미룰지, 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를 미룰지 고민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공직 사회는 더했다. 다주택을 보유한 공무원에게 승진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에 작은 집을 한 채 보유한 예비 배우자와 결혼을 미룰지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사례도 있다.
저출산 문제는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명은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무엇보다 아이가 적어지면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혁신에도 저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 3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획기적인 출산 장려책을 주문한 것도 이런 절박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회의에서는 돌봄·교육, 일·육아 병행, 주거, 양육비, 건강 등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획기적인 방안은 없이 재탕 삼탕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제는 국가의 모든 역량을 저출산 극복에 쏟아부어야 할 때다. 저출산은 경제성장 저하, 재정 악화, 병역 자원 감소, 연금 고갈 위기 등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모든 병의 근원이다.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혼과 출산에 따른 혜택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불이익부터 없애야 한다.
만혼이 만연한 요즘, 직장 생활을 10년 이상 하다가 결혼하는 부부가 많다 보니 각각 1주택씩을 소유한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혼인해 1가구 2주택이 되면 혼인한 날로부터 5년 안에 주택을 처분하지 못할 경우 양도세 비과세 혜택이 사라지며 오히려 다주택자 중과세로 세금 폭탄을 맞는다. 보유세도 마찬가지다. 1가구 1주택자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시 공시 가격 11억 원까지 공제되고 장기 보유 세액공제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2주택자가 되는 순간 공제가 6억 원까지로 제한되고 각종 혜택도 사라진다.
게다가 임대 소득 과세도 강화된다.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유예 기간 내에 주택을 팔아야 한다. 사실상 강제 매각인 셈이다. 세금을 줄이려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거나 위장 이혼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세법을 두고 ‘결혼 방지법’ ‘이혼 조장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도 유사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대부분의 복지 혜택이 가구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가구원이 늘어날수록 1인당 복지 혜택은 줄어든다. 대한민국 인구 전체를 가구로 묶어 세제나 복지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 외려 가구의 해체를 유발하고 있는 셈이다. ‘2주택을 보유한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게 왜 문제냐’ ‘가구를 이루면 주거를 공유해 생활비가 절감되니 복지 혜택도 줄이는 게 맞다’ 등의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부자와 빈자를 주택 수에 따라 가르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고 그것이 혼인을 저해해 출산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뜯어고치는 게 맞다. 가구를 기준으로 하는 세제와 복지는 결혼 이후에도 소득과 재산을 각자 관리하는 부부가 급증하는 요즘 세태와도 맞지 않는다.
최근 가족의 범위에 사실혼·동거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일상과 가사를 공유하는 관계를 생활 동반자로 보고 일상가사대리권, 친양자 입양 및 공동 입양, 상속권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가족 범위 확대가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혼인한 부부에게 불이익을 주는 세제·복지부터 뜯어고치는 게 우선이다. 아직까지는 결혼과 함께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우리나라의 주류적 가족 형태다. 다음 저출산고령사회위 회의에서는 한층 진일보한 저출산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