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 공유와 유사한 한국식 핵 공유를 위해 ‘한미핵협의그룹(NCG)’을 신설하기로 했다. 북핵 위협에 대응해 확장 억제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명예교수인 유호열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핵우산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확장 억제력, 3축 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응 수단으로 북한을 압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력한 전자파 등 신기술이 적용된 전자 무기를 포함한 초고성능 무력의 개발과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국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유사시에 대비해 적어도 일본 수준의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핵 위협 수위를 더 높이고 있다.
△북한은 잇단 도발로 핵 능력 고도화, 투발 수단 다양화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이 핵 무력 국가로서의 지위와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북한식 ‘도광양회(韜光養晦·본심을 감추고 실력을 키움)’, 즉 기만적 시간 벌기 술책이 막바지 단계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 차원에서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한 반발 차원을 넘어섰다. 다양한 무기 체계 실험으로 핵 무력을 과시하며 정치·군사·심리적으로 한국과 미국을 협박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된 것은 국내 햇볕론자들의 오판과 자만, 방임과 무책임 탓이 크다. 이들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대외 협상용으로 간주하고 비핵화를 전제로 각종 혜택과 지원을 제공했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대북 정책이 북핵 고도화의 ‘일등 공신’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문 정부는 편향된 인식으로 대북 정책을 친북화해 북한의 핵 무력 질주에 외적·내적 기반을 제공했다. 대화·평화 타령을 하면서 핵 개발을 방치·방관해 핵 무력 완성 시기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미연합훈련 축소, 배치된 사드의 형식적 운영 등은 결국 한미 동맹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한미일 공조 체제의 이완을 초래했다. 또 귀순 어부 강제 북송, 우리 공무원의 서해 피살 방치 등 김정은 정권의 비위를 맞추려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는 남남 갈등을 불러 대북 억지력의 균열을 가져왔다. 게다가 대북 방송 중단과 대북전단금지법 시행 등으로 우리의 대북 경계심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했다. 북한은 문 정부 5년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핵무기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번 셈이다.
-북한이 방해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북한은 그동안 보유 자원의 50~60%를 유사시 대비용으로 비축하고 나머지를 활용해 군사력 등을 증강해왔다. 그런데 문 정부가 한미연합훈련 등을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북한으로서는 무력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자원의 20% 정도만 대비용으로 두고 80%를 핵무기 개발에 쏟아부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전보다 많은 자원을 핵 무력 증강에 투입할 수 있으니 개발 속도도 빠르고 완성도도 높일 수 있지 않겠는가.
-현 정부의 부담이 커졌다. 북한의 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현재 우리의 대응 체계는 한미 동맹을 통한 확장 억제력 확대, 3축 체계 조기 완성,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 강화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미국의 확장 억제력을 과시하기 위한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은 냉전 시대의 대립 구도에 적합한 전략이다. 현재와 같은 변화된 질서, 변화된 전력, 변화된 전술에서는 최적의 대응 수단이 될 수 없다. 보다 진전된 확장 억제력이 제공되더라도 현실적으로 신뢰와 실천의 문제가 있다. 북한이 전술 핵탄두 등을 확보한 상황이라 3축 체계도 조기 경보나 선제 타격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한일 정보 협력 역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기존 전략에 대한 재검토와 전략 재설정이 불가피하다.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이제 정말 다급해졌다. 절박감을 가지고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 북핵 위협 현실화에 대한 냉정하고 정확한 상황 파악과 분석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이른 시일 내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지금보다 실효적이고 강화된 확장 억제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 핵 위협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확장 억제력, 3축 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응 수단으로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초고성능 무기의 개발과 배치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미국과 협력해 강력한 전자파 등 신기술이 적용된 전자 및 레이저 무기를 빨리 현실화해야 한다. 물론 북한이 실제 위협과 피로감을 느끼도록 한미 군사훈련을 다변화하고 고도화하는 노력도 소홀히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각에서 우리도 자체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2021년 한국인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한국의 자체 핵무기 개발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미국의 확장 억제력에 대한 우리 국민의 믿음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핵은 군사적 무기 이전에 외교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심리적인 전략 무기이기도 하다. 북한 정권이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진화한 핵 무력을 계속 선보이고 ‘무자비한 공포’ 같은 발언을 쏟아내면서 겁박 수위를 높이는 것은 심리전의 일환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를 미사일 도발 현장에 데리고 나타나는 장면을 공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핵 무력을 과시해 우리 국민들의 불안을 조성하고 남남 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할 방안이 있는가.
△독자적인 핵 개발은 걸림돌이 많기 때문에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일본 수준의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유사시에 대비해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 등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에게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고 있구나”라는 신뢰를 줄 수 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려면 한국이 핵무기 생산은 아니더라도 핵 물질 재처리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미국에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설득해야 한다.
-중국·러시아·북한이 밀착하면서 신냉전이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은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을 자신들에게 매우 유리한 구도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공고히 하거나 제3지대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한미일 공조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할 것이다. 또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한 배후 세력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적극 활용하려 들 것이다. 중러는 이미 유엔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계속 막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 밖에서 마음 놓고 핵 무력을 확장하고 도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전략에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할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의 대중·대러시아 관계가 과거 냉전 시대에 비해 훨씬 유연해졌다는 사실이다.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북방 정책을 인도태평양 전략과 접목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계속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면 북한의 셈법을 무너뜨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동맹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굳건한 한미 동맹은 우리가 중국·러시아는 물론 중남미·아프리카 지역 등 제3국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최근 통일부가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세계 최악의 북한 인권 실태가 드러났다.
△유엔총회가 18년째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할 정도로 북한 인권 실태의 참상은 심각하다. 김정은 정권은 핵 무력 증강에 대한 유엔의 광범위한 제재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 체제 도전 등을 반국가·반당 행위로 규정해 처벌하는 등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권 실태에 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보존이 필요하다. 이미 설치된 북한인권정보센터를 활성화하고 7년째 출범도 못한 북한인권재단을 하루 빨리 가동해 정책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북한 인권 문제의 실질적인 당사자지만 그 역할을 충분히 해오지 못했다. 정권에 따라 북한 인권 정책이 달라지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북한 인권 정책이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출 수 있도록 초당적인 기구와 입법을 통해 대내외의 공신력을 제고해야 한다.
◆He is…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정치학회 회장, 북한연구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북한의 현실과 통일한국의 미래(공저)’ ‘핵 없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전환기 북한체제의 운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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