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멈추는 순간 해냈다는 성취감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 나왔다. ‘키스 앤드 크라이 존’에서 점수를 확인한 뒤의 표정은 더 맑게 빛났다.
한국 피겨가 김연아(은퇴) 이후 10년 만에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주인공은 이해인(18·세화여고). 이해인은 24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75.53점, 예술점수(PCS) 71.79점, 합계 147.32점을 받았다.
이해인은 쇼트프로그램 점수 73.62점을 합한 최종 총점 220.94점으로 사카모토 가오리(일본·224.61점)에 이어 2위에 오르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격차는 불과 3.67점이었다.
세계선수권은 올림픽 다음으로 큰 무대다. 한국 피겨 선수가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딴 것은 2013년 김연아의 금메달 이후 처음이다. 지금까지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획득한 한국 선수는 김연아(금 2, 은 2, 동메달 2개)뿐이었다. 김연아가 은퇴한 뒤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지난해 여자 싱글 5위에 오른 유영(수리고)이었다.
이해인은 만 14세였던 2019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 크게 주목받았다. 지난달 4대륙선수권에서 210.84점으로 김연아 이후 14년 만에 이 대회 금메달을 따더니 더 높은 무대에서 자신의 최고점(2022년 4대륙선수권 213.52점)을 경신하며 ‘포스트 김연아’의 선두 주자로 입지를 굳혔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최종 총점 모두 개인 최고점을 썼다.
‘오페라의 유령’ OST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이해인은 첫 번째 연기 요소인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완벽하게 뛰어 기본점수 7.50점, 수행점수(GOE) 1.26점을 받으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이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선 쿼터 랜딩(점프 회전수가 90도 수준에서 모자라는 경우) 판정이 나왔지만 큰 감점은 없었다.
이해인의 안정적인 연기는 계속됐다. 트리플 루프, 트리플 살코를 실수 없이 수행했다. 아름다운 플라잉 카멜 스핀(레벨4)으로 연기의 완성도를 높인 이해인은 플라잉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레벨4), 코레오시퀀스로 물오른 연기력을 과시했다.
가산점 10%가 붙는 후반부에도 이해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트리플 러츠-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완벽하게 뛰었고 트리플 플립과 더블 악셀도 클린 처리했다. 모든 점프 과제를 마친 이해인은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스텝 시퀀스(레벨4)와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레벨4)을 우아하게 펼치며 연기를 마무리했다.
동메달은 210.42점을 받은 루나 헨드릭스(벨기에)가 차지했다. 김채연(수리고)은 총점 203.51점을 받아 6위에 올랐고 김예림(단국대)은 174.30점으로 18위에 그쳤다. 한국은 이해인과 김채연의 활약에 힘입어 내년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출전권을 3장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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