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무너지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고 있어 수출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국제통상학회장인 송백훈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출 위기를 극복하려면 과도한 중국 교역 의존도를 낮추는 게 시급하다”며 “동남아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수출 시장 및 품목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에 한국과 일본의 동참은 불가피하다”며 “경제·안보·외교 등 여러 채널을 활용해 한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역수지 적자가 장기화하고 있다.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
△올해 들어 무역수지 누적 적자가 이달 20일까지 벌써 241억 달러에 달한다.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전체 무역 적자(478억 달러)의 절반을 넘어섰다. 무역 적자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을 비롯한 전 세계적 물가 상승에 따른 수입액 증가, 대(對)중국 수출 대폭 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우리 무역의 구조적인 문제는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25.3%에서 지난해 22.8%로 줄었는데도 여전히 과도한 수준이다.
-당분간 수출 회복이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많다.
△저성장 속에 고물가가 이어지는 세계 경제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수출의 어려움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 규모는 1292억 달러를 기록해 우리나라 총수출의 약 19%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어려운 여건에도 선방한 셈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2월에는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의 여파로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2.5%나 줄었다.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로 반도체 수출 전망이 더 어두워지고 있는데.
△중국에서 수입하는 반도체 가운데 한국산의 비중은 약 21% 정도이다. 그러나 지난해 이후 한국 반도체의 시장 점유율은 하락하는 추세다. 중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어 우리 반도체 수출은 갈수록 난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중국 경제는 3% 성장에 그쳤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도 5%다. 과거와 같은 중국 경제의 고성장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노골화하고 있어 대미 수출 여건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지원법·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미국이 추진하는 일련의 정책들의 1차 목적은 중국 견제다. 이를 위해 동맹을 끌어모으면서 같은 편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바이든 정부는 동맹의 가치보다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유럽연합(EU)도 ‘유럽판 IRA’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을 공개하는 등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연상해보자. 서로 협력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결국 더 나쁜 선택을 하게 된다. 지금 미국과 EU의 경쟁이 그런 양상이다. 미국과 EU가 각각의 IRA를 시행하는 경우 양 진영에도 해가 되지만 게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한국도 큰 피해를 본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과 EU가 타협해 공동의 IRA를 새로 만들어 실행하는 경우이다.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면 우리나라의 피해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수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사우디아라비아·호주 등에서 각각 수입하는 원유와 원자재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무역·투자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가능하므로 수출 시장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기업들이 동남아에 관심을 쏟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특히 베트남은 적당한 크기의 시장이 존재하고 노동 비용도 저렴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나라인 만큼 적극 공략할 필요가 있다. 또 14억 명이 넘는 인구에 세계 6위 규모의 국내총생산(GDP)을 가진 인도 시장도 주목해야 한다. 아직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베트남에 비해 인도 시장에 신경을 덜 쓰는 것 같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인도 수출은 189억 달러로 중국의 12%에 불과하다. 인도는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수출 시장으로서 큰 잠재력을 가진 만큼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와의 교역·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는 베트남이 ‘제2의 중국’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베트남이 지난해 처음으로 우리의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으로 부상했다. 우리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 지도부가 친중파로 채워지면서 정치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 같다. 교역과 투자가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쏠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과의 교역에 과도하게 의존했다가 ‘탈(脫)중국’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점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특히 베트남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공산국가라는 점에서 제2의 중국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만 중국은 베트남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큰 내수 시장을 가졌고 기술력도 높다. 반면 베트남은 시장 규모나 기술력 면에서 중국에 뒤처진다. 그렇더라도 한 국가, 그것도 공산주의 나라에 무역과 투자가 몰리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다른 동남아 국가나 중남미·아프리카 지역으로 경제 영토를 넓히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물론이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먼 중남미 또는 아프리카는 운송비 등 여러 문제로 우리가 당장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익이 많지 않다. 반면 동남아 지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므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특히 동남아 국가 가운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는 자원 부국이기도 하다. 이 나라들과의 협력 확대는 수출 활로 개척은 물론 원자재 공급망 확보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시장 다변화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돌파구를 열어야 할까.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체결한 FTA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2006년 5월 타결된 한·아세안 FTA는 한미 FTA, 한·EU FTA 등에 비해 개방 수준이 낮고 활용률도 높지 않다. 협정 타결 이후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변화한 경제 환경에 맞게 FTA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시장 개방률을 보면 한미 FTA는 99.0%, 한·EU FTA는 99.6%에 달하는 데 비해 한·아세안 FTA는 86% 수준에 그친다. 아세안과 추가 협상을 벌여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민감 제품의 추가 자유화를 포함해 시장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급변하는 통상 환경이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수출 시장 및 품목 다변화가 가능하다면 우리 경제에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 및 품목 다각화는 단기적으로 힘든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이슈별로 다른 국가들과 합종연횡하며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우리 정부가 협조할 수 있는 나라들과 통상 외교를 활발히 펼쳐야 한다. 자동차 분야의 경우 자동차 강국인 일본과의 공조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또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나라들과 ‘워킹그룹’을 만들어 미국·EU 등의 보호무역주의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경제 협력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에 한국과 일본은 함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안보·외교 등 여러 채널을 통해 한일 관계를 복원할 기회를 자주 마련해야 한다. 이 같은 차원에서 일본과의 FTA를 다시 추진할 필요가 있다. 2004년 한일 FTA 협상이 결렬된 후 일본과의 FTA 논의는 중단된 상태이다. FTA 협상이 재개될 경우 관세율 인하 같은 기존의 틀을 넘어 공급망 문제까지 협의할 필요가 있다.
-주요국들이 자국 산업의 부흥을 위해 다양한 리쇼어링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과 일본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이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불이익, 외국인직접투자(FDI) 감소에 따른 생산 기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도 오래 전부터 기업 유턴을 추진해왔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기업 유턴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다양한 정책 개발과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유턴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리쇼어링이 성공하려면 정부가 기업들의 요구 사항을 정확히 파악해 전방위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반도체·미래차 등 전략산업 기업들의 국내 유턴을 바란다면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이 예외적으로 가능해지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He is…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FTA팀장 등을 거쳐 2017년부터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올해 1월부터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국제통상론(공저)’ ‘동남아 투자의 명암(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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