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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붉은깃발법'

안경진 바이오부 기자

안경진 바이오부 기자




빅토리아 여왕 시절인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됐던 일명 ‘붉은 깃발법’이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듯하다. 붉은 깃발법은 증기자동차의 등장으로 실직 위기에 처한 마부들을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다. 1대의 자동차에 운전사와 기관원·기수를 둬야 한다는 의무 조항과 함께 시내 최고 속도를 3.2㎞/h로 제한했고 기수가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 55m 앞에서 이끌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도록 강제한 것이다. 붉은 깃발법은 1896년 폐지될 때까지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켜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프랑스·독일·미국에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150여 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당시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것은 플랫폼 기반 신사업과 기존 사업자 간 갈등 양상과 닮았기 때문 아닐까. 2018년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에 빗대어 소환된 붉은 깃발법은 이듬해 ‘타다’ 논쟁과 함께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 의료 광고 플랫폼 강남언니,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 등 최근 벌어지는 전문직 서비스 플랫폼 업계와 전문직역 단체 간 갈등도 붉은 깃발을 연상케 한다. 30년간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던 원격의료의 경우 코로나19를 계기로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4월 말이나 5월 초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료를 선언하면 감염병 위기 단계가 하향돼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정부는 의료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지만 비대면 진료 대상을 놓고도 의견 차가 큰 상황이어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의 긴급 합의로 어렵사리 국회 법안소위원회에 오른 의료법 개정안 4건도 제동이 걸리면서 다음 달 국회 통과가 요원해졌다. 국민의 건강을 사수하려는 의사·약사 단체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 추진에 대응하느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대책 논의에 불참했던 의사 단체의 행보를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반대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오해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대응 행보도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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