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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KT CEO 잔혹사는 그만

■ 성행경 IT부 부장

'주인없는 회사' 이유 외풍 시달려

정권 바뀔때마다 낙하산 논란 반복

이번엔 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혁신

'최고의 국민기업' 거듭나기 기대





KT 차기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극적인 반전도 있다. 드라마는 중반을 넘어 종반을 향해 가고 있지만 결말을 예상하기 어렵다. 이달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결론이 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요즘 인기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프로그램처럼 시즌2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야 흥미롭겠지만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지루하고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빨리 나서 KT가 새로운 리더십을 바탕으로 정상적인 경영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는 KT 사태의 본질은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다. 2002년 민영화될 때부터 잉태된 문제지만 20년이 넘도록 풀지 못했다. 정부 지분이 없음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이 불거지고 그럴 때마다 최고경영자(CEO)가 고초를 겪었다. 오랜만에 내부 출신으로 CEO가 된 구현모 현 대표도 지배구조를 바꾸지 못했다. 그는 이사회에 친정부 인사를 들였다. 정권이 바뀌면서 공격의 빌미가 됐다. 전 정권의 압박과 요구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매출 25조 원이 넘는 대기업에 걸맞은 지배구조를 만들어 운영했는지 자성하고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윤경림 차기 대표 후보자가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요청해 운영에 들어간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긍정적이다.



KT 지배구조 개선은 이사회 구성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2021년 두 명의 이사가 대표이사 경영평가 보상 등급 상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기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KT 이사회가 적어도 ‘거수기’ 역할만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만 둘 다 연임에 실패하면서 빛이 바랬다. KT는 개인 대주주가 강력한 오너십을 발휘하는 대기업집단과 다르다. 소유권이 개인에 집중돼 있지 않은 만큼 다양한 주주들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재취업을 앞두고 용돈 벌이를 하는 전직 관료나 정치인, 경영진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엮인 교수와 법조인을 구색용으로 이사회에 앉히는 관행에서 탈피했으면 한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을 비롯해 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이사회를 구성해 경영진을 뒷받침하면서도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원칙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권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고 기금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도록 하기 위해 2019년부터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행동 원칙)를 도입한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이 위임돼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사회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조건하에 언제라도 직접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KT 대표 선임 과정에 개입한 것도 이 전제 때문인데 정권의 요구와 압박에 따른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연금 사회주의’라고 비판하던 시절은 지났다. 국민연금도 주주권을 행사할 권한이 있다. 다만 의결권 행사는 정권이나 특정 세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수탁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수익률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의결권 행사도 주식 운용을 대신하는 위탁사가 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독립성 확보는 당연한 과제다.

민영화 이후 KT는 이용경 초대 대표를 제외하고 남중수·이석채·황창규 전 대표와 구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KT CEO 잔혹사’라는 말까지 생겼다. 주인 없는 회사라는 이유로 온갖 외풍에 시달렸고 그때마다 조직이 휘청거렸다. KT의 주인은 경영진도, 정부도 아닌 임직원과 주주들이다. KT 경영진과 이사회가 정기 주총에서 주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지배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꿔냄으로써 ‘국민의 편익을 도모하는 최고의 국민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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