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의 작품을 “허연 바탕에 점 한 두 개 찍은 그림” 정도로 이야기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림은 현장에서 실제로 봐야 ‘제맛’을 알 수 있다. 한 개의 점일지라도 공들여 매만진 붓질의 반복과 안료의 겹침이 있으며, 그 점 하나가 자리 잡음으로써 캔버스의 나머지 공간과 만들어내는 관계성 등은 그림 앞에서라야만 확인할 수 있다. 김택상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층층이 얇게 입힌 물감을 통해 빛이 물을 머금은 양, 빛이 숨을 쉬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사진이나 디지털 이미지로 담아내기가 어렵다. 디지털과 메타버스 등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편리하고 효율적이지만, 미술품의 특별한 질감과 색채는 사라지거나 약간씩 변형되곤 한다. 특히 추상미술의 경우 질감 그 자체와 색채의 고유함이 작업의 핵심인 경우가 많기에 ‘회화의 디지털화’는 많은 생각 거리를 제공한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주영한국문화원이 올해의 첫 전시로 ‘환승: 한국과 영국의 추상화와 디지털화’를 기획해 4월 14일까지 개최한다. 회화의 디지털 문서화 과정을 탐구하는 워크숍 형식에서 출발한 독특한 전시다. 영국 런던예술대학교와 공동으로 기획했고 단국대와 포항공대가 후원했다. 영국의 리서치 기관인 UKRI(UK Research and Innovation)의 지원을 받은 국제 협업 연구 프로젝트가 전시의 기반이 됐다.
이우환, 김택상, 김인영, 홍수연 등 한국작가 4명과 사이먼 이브스(Simon Eaves), 앨런 존스톤(Alan Johnston), 마이클 키드너(Michael Kidner), 사이먼 몰리(Simon Morley), 안나 모스만(Anna Mossman), 라파엘(Rafael), 다니엘 스터기스(Daniel Sturgis) 등 영국작가 7명이 참여했다. 단순히 그림을 촬영해 디지털로 변환하는 일반적인 방식만을 다뤘다면 재미 없었을 전시다. 작품에 내재된 감각이나 분위기, 문화적 상징성과 관객과의 상호성을 기록하는 방법으로써의 디지털 매체의 잠재력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졌기에 의미가 크다.
전시 개막행사에는 영국 소아스(SOAS) 런던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장인 샬롯 홀릭 교수, 영국 박물관의 김상아 학예사 등 런던 미술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했고, 미술사학자인 우정아 포항공대 교수와 참여작가 사이먼 몰리·다니엘 스터기스의 전시 투어 및 세미나도 성황리에 열렸다. 대전시립미술관장을 지내고 최근 주영한국문화원장으로 부임한 선승혜 원장은 “예술로 보이는 것을 넘어서 새롭게 보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는 일에 앞장서고자 한다”면서 “이번 전시는 한영수교 140주년의 해에 열려서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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