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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시행령 통치의 시대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의원은 뭐하는 사람인가요.” 요즘 한창 뜨거운 대화형 인공지능인 챗GPT에 질문을 해봤다. “국회의원은 국가의 입법부인 국회의 구성원입니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돼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법률을 제정하며 예산안을 심의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런 쉬운 질문쯤이야’라는 듯 금방 이런 답변이 달린다. 제법이다.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은 뭐니 뭐니 해도 법을 만드는 일이다. 명색이 국회는 입법부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작 법안 심사를 위한 회의는 제대로 열리고 있을까. 정무위원회의 금융 관련 법률안심사소위원회의 경우 국회법상 매월 3회 이상 개최해야 한다. 하지만 여야 합의가 안 된다는 이유로 지난 9개월간 단 5차례의 회의가 있었을 뿐이고 논의한 시간은 총 15시간 남짓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정부는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상을 보면 정부 여당은 법안 통과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이미 행정부의 재량이 큰 데다 많은 법률이 상당 부분을 시행령에 위임해둬 입법부의 도움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경찰국을 만들고 법무부가 검찰의 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일은 모두 국회를 거치지 않고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했다.

이런 ‘시행령 통치’는 국회의 책임이 크다. 국민의 권리·의무, 국가기관의 권한·책임, 조세의 종목·세율 등은 법률로 정하도록 돼 있다. 이런 중요한 일은 국민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법으로는 골격만 정하고 주요한 사항을 시행령에 위임하면 실제로 중요한 의사결정은 행정부가 알아서 하는 꼴이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벤처·혁신기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펀드(BDC)에 일정한 혜택을 주는 법률(안)의 경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최소 비율을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돼 있다. 행정부가 정한 시행령에서 최소 투자 비율을 40%로 해 나머지 60%를 대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에도 혜택을 주기로 하는 것은 타당한가. 그 기준이 시행령에 위임돼 있어 국회가 타당성을 심사하지 못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은 아닐까.

최근 정치 개혁이 여의도의 관심 사항이다. 선거 제도 개편을 위해 많은 정치인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선거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보다 각 정당이 좋은 후보자를 공천해 국회에서 제대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더 쉽고 중요할지 모르겠다.

국회의원이 가장 기본적인 법률안을 심사하는 일에 별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국회가 수없이 많은 법안을 통과시켜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법률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뭣이 중한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여야 합의로 법안심사회의를 열지 말고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해 일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검토해야 할 법안은 차고 넘치고 국민들에게 영향이 큰 중요한 사항은 국회가 직접 정하고자 한다면 일주일 내내 회의를 해도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다. 일을 더 한다고 정치에 신뢰를 가질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일이라도 원 없이 해 보고 평가를 받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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