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물가 안정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진 것이 지표로 속속 확인되면서 글로벌 자금시장이 격동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에 미국 달러 가격과 국채 수익률이 큰 폭으로 올랐고 긴축 장기화로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질 것을 예상한 수백억 달러의 자금이 뉴욕 증시에서 빠져나갔다. 이런 와중에 투자자들이 올해 세계경제가 심각한 침체는 피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면서 대표적 위험자산인 비트코인이 2만 5000달러까지 급등하는 등 ‘머니무브’가 본격화한 모양새다.
실제로 미국 달러를 유로·엔·파운드 등 6개 주요 통화와 비교한 달러인덱스는 17일 장중 104.4포인트까지 뛰어올랐다. 지난해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같은 해 9월 114.1포인트까지 치솟은 달러인덱스는 불과 이달 초까지만 해도 연준이 연내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며 이달 1일 101.2포인트로 뚝 떨어진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6.4% 올라 시장 전망치를 웃돌고 16일(현지 시간) 나온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월가 예상치(5.4%)보다 높은 6.0%의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지난해 ‘강달러’ 현상이 재연될 가능성이 고개를 든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연초부터 이어진 달러 약세 흐름이 뒤집어졌다”고 분석했다.
시장금리 지표인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도 17일 장중 3.89%까지 오르며 지난해 10월 기록한 고점(4.24%)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자본시장 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미국의 1월 소매판매가 지난해 12월 대비 3% 증가해 미국 소비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도 10년물 수익률을 밀어올리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6개월 만기 국채 수익률은 5%를 넘겨 금융위기 당시인 2007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단기 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단기물 시장은 더욱 꿈틀거리고 있다. 미국 달러, 국채와 더불어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가격은 이날 장중 1822달러대까지 올라 지난해 11월 기록했던 저점(1629달러) 대비 10% 이상 상승했다.
연준 인사들의 ‘매파’ 발언은 이 같은 상황을 더욱 부추겼다.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상 폭은 0.25%포인트가 아닌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 역시 나왔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준이 항상 (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필요하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고 더 많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은 총재도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길어질 것으로 판단한다”며 3월 FOMC 회의에서 빅스텝을 지지하겠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싱가포르 크레디트 아그리콜 CIB의 데이비드 포레스터 수석전략가는 “시장에 번지는 ‘빅스텝’ 공포가 국채 수익률과 달러 가격의 동반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에 주식 비중을 늘렸던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제 뉴욕 증시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중순까지 미국 주식 뮤추얼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총 310억 달러(약 40조 원)가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WSJ는 시장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거둬들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비트코인은 전날 한때 2만 5000달러에 육박하며 최근 6개월 내 최고 가격을 기록하는 예상 외의 강세를 나타낸 후 이날 2만 3000달러대로 떨어져 상승분을 일부 반납했다. 연준 긴축에 테라·루나 사태, FTX 파산 등 겹악재가 닥친 탓에 지난해 11월 16000달러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값이 크게 오른 것이다. 로이터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테라·루나 코인 ‘폭락’ 사태와 관련해 사기 등 혐의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기소하는 등 악재가 계속되고 있지만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 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아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점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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