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투(春鬪)는 ‘춘계 투쟁’의 줄임말로 매년 봄이 되면 각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공동 투쟁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의 원조는 일본이다. 1950년대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가 시작한 산업별 노조의 공동 임금 투쟁에서 비롯됐다. 일본 노조는 한국전쟁 이후 경제가 활황기에 들어서자 화염병과 죽창 등을 들고 연례행사처럼 춘투를 벌였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노조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상인들이 노조에 대한 소송에 적극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민형사 소송에서 줄줄이 진 노조의 재정이 바닥났고 극한 투쟁도 잦아들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거품 경제가 꺼지고 공기업 민영화가 가속화하면서 거대 노조의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
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주도하는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구시대적인 투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춘투도 모자라 연중 투쟁이 정례화됐다. 여름에는 자동차 노조를 중심으로 하투(夏鬪)를 진행하며 가을에는 산업별 교섭 등을 명분으로 추투(秋鬪)를 벌인다. 겨울에도 온갖 이유로 동투(冬鬪)를 이어가는 식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은 2월 초 대의원 대회에서 3월 25일 투쟁 선포 대회, 5월 총궐기, 5~6월 최저임금 투쟁, 7월 2주 동안의 총파업 투쟁 등을 의결했다. 또 내년 4월 총선을 조직적으로 준비하겠다면서 정치 행보 강화를 예고했다. 지난해 2월에도 올해와 비슷한 연간 투쟁 일정을 미리 만들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플랫폼을 통한 긱노동(Gig Work·단기 혹은 일회성으로 일하는 초단기 근로)이 급증하는 등 노동시장 환경도 바뀌고 노동자들의 인식이 변했는데도 철 지난 투쟁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은 자신들만의 ‘도그마’에 빠진 기득권 노조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양 위원장은 20~30대 조합원 비율이 높은 MZ세대(1980~2009년 출생) 노조가 정치 투쟁을 비판한 것에 대해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언급하며 “노조를 막 시작하는 젊은 MZ분들은 이런 문제를 깊이 사고하거나 직접 경험해본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MZ세대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데 대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훈계조의 지적이었다. 양대 노총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MZ세대는 민주노총 등을 ‘일은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갑질하는 꼰대’의 상징처럼 여긴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산업구조가 급변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전통적인 노조와 노선을 달리하는 조직들이 늘고 있는 까닭이다. LG전자의 ‘사람 중심 사무직 노조’ 등 8개 MZ노조는 21일 협의회 발대식을 연다. 이전부터 MZ세대는 기존 노조에 기대지 않고 특정 이슈의 사회적 공론화와 단발 시위로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표출해왔다. 2021년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은 본사의 과도한 마케팅 행사에 대한 의견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은 뒤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트럭 시위’를 벌였다. 그 과정에 민주노총이 ‘돕겠다’며 노조 결성을 권유했지만 “트럭 시위를 당신들의 이익 추구에 이용하지 말라”며 거부했다. 결국 이들은 회사 측으로부터 “연말까지 1600여 명을 새로 뽑고 임금 체계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노조는 필요하다. 그동안 기성 노조가 극한 투쟁 방식으로 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노조 활동도 달라져야 한다. 민주노총 등은 ‘트럭 시위’ 등 MZ세대의 행동에 대해 ‘무(無)조직’ ‘탈(脫)이념’의 특징을 보인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기득권 노조가 노동자의 인식 변화 등에는 눈감은 채 자신들의 잣대로 재단한 것에 불과하다. 양대 노총이 구태의연한 노동운동 방식을 고집한다면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다. 왜 국민들의 질타가 끊이지 않고 노동자들로부터도 외면받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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