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펀드에 가입해 대형 오피스 빌딩이나 호텔에 투자하는 붐이 일었던 2017년. 기자는 한 부동산 운용사 관계자로부터 “시장에 나온 부동산 공모펀드의 투자 대상 대부분은 기관투자가들을 한 번 거쳤다가 팔지 못한 물건”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의 말을 좇아 부동산 펀드를 팔았던 운용사에 묻자 “기관을 먼저 거쳤어도 개인이 추구하는 수익률은 기관보다 낮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투자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영역은 아니어서 위험을 알리고 팔았다면 상품 판매사나 운용사에 잘못을 묻기 어렵다.
하지만 당시 부동산 펀드에 투자한 개인들의 최근 성적표를 보면 그저 불완전판매 여부만 문제 삼을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기관투자가의 독무대’인 부동산 투자에 개인이 뛰어들었을 때 얼마나 혹독한 위험을 지고 분루를 삼켜야 하는지 확인되기 때문이다.
2016년 개인들은 하나대체투자의 펀드 상품에 가입해 690억 원을 모으고 1380억 원의 담보대출을 받아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 투자했다. 지금 이 호텔은 펀드 만기가 다하도록 매각이 되지 않았는데 3~4% 하던 대출이자율은 12%로 훌쩍 뛰었다. 호텔이 엄청난 호황을 누리지 않는 이상 개인투자자는 원금으로 이자를 갚아야 할 형국에 처해 있다.
반면 2016년부터 3~4%에 돈을 빌려준 산업은행·신한생명·코리안리는 지난해 말 대출 채권을 연합자산관리와 하나F&I에 넘겼다. 12%로 돈을 빌려준 기관 중 연합자산관리는 은행들이 주주인 기관이니 결국 금융회사끼리 주고받은 거래인 셈이다. 기관의 전문가들조차 이를 놓고 “고리대금을 한 것”이라며 혀를 찼다.
부동산 투자회사인 이든자산운용은 경기도 판교의 대형 오피스 두 동을 투자한 지 8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3850억 원에 되팔아 70%의 수익이 났다고 밝혔다. 매각을 주관한 딜로이트안진·존스랑라살(JLL)·NAI프라퍼트리는 이를 자랑하듯 보도 자료를 냈다.
이 운용사의 펀드는 SK증권 등 기관들이 가입돼 있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겠지만 대형 부동산을 단기 매매했다는 사실은 원금 손실 위험에 처한 개인들과 대비돼 씁쓸한 현실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돈의 힘만 과시한 거래였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투자하면서 가치 상승을 도모한다는 글로벌 부동산 투자자들의 투자 원칙에도 거리가 먼 단타 매매에 가깝다.
이들 사례는 단지 최근 금리 급등에 따른 이례적 사건일까. 그렇지 않다. 2012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공모펀드를 통해 개인 투자금을 모아 브라질 호샤베라타워를 샀고 2020년 투자금의 절반을 날린 채 청산했다. 당시 투자에 참여한 기관들은 개인과 달리 투자와 동시에 대출도 해줬기 때문에 대출이자를 챙겨 투자로 인한 손실을 보전했다. 당시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문제를 지적하는 기자에게 운용사는 아직 청산이 남아 있으므로 문제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결과는 막대한 손실로 남았고 운용사는 투자자를 달래느라 원칙을 어기며 손실을 보상했다. 투자 업계는 큰손에게 더 많은 것을 챙겨주는 시장이다. 오가는 돈의 단위가 큰 부동산 투자 업계는 더욱 그렇다. 개인들이 금융기관의 달콤한 말에 휘둘려 이 같은 현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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