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제국을 세 번 경험했다. 하지만 첫 번째인 신성로마제국은 명실상부한 통일국가가 아니었다. 지금의 독일·체코·이탈리아를 아우르는 수많은 나라들의 복합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제3제국’은 1933년에 출현한 히틀러의 나치 국가를 말한다. 이 두 제국 사이에 반세기 동안 존재한 것이 제2제국이다. 1871년에 세워져 1918년 1차 대전 패전과 더불어 사라진 이 제2제국의 CEO가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다. 오너는 빌헬름 1세였다. 제2제국이 탄생하기 전 독일은 34개의 크고 작은 지역 국가로 분열돼 있었다. 그 때문에 독일은 오랫동안 ‘유럽의 놀이터’로 불렸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심축이 필요했다. 그 역할을 담당한 나라가 프로이센이다. 지금의 베를린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한 프로이센에는 노회한 현실 정치가가 있었다. 총리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이 가진 힘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5대 열강 중 하나였지만 다른 국가들을 동시에 제압할 수 없었다. 비스마르크는 웬만하면 전쟁보다는 외교로 문제를 풀어가고자 했다. 그랬던 그도 주변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국왕과 신료들을 설득해 7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세 번이나 전쟁을 치렀다.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은 북부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을 확보했다. 1866년에는 통일운동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남쪽의 오스트리아를 꺾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장애물은 라인강 국경 넘어 서쪽의 숙적 프랑스였다. 잘 조직된 군대와 주도면밀한 전략 덕분에 프로이센은 1870년 프랑스에 완승을 거뒀다. 나폴레옹 3세까지 포로로 잡은 후에 비스마르크는 엄청난 정치적 연극을 기획했다. 프랑스인의 자존심 베르사유 궁전에서 1871년 1월 18일에 신생 독일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한 것이다. 안톤 폰 베르너의 그림 ‘빌헬름 1세의 대관식’이 그날의 광경을 증언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