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인격화 현상이란 정치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프로세스로 바라보지 않고 사람 중심으로 정치 현상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를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은 많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일단 정치를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게 되면 이성적인 존재이어야 할 정치가 감성화된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무한 신뢰는 정치의 감성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정치가 감성화되면 정치를 적과 동지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발생한다. 정치란 선(善)을 구현할 수 있는 수단도, 정의를 위한 도구도 아니고 단지 권력 추구 현상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이유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란 그런 존재임에도 이분법적 사고로 정치적 상대방을 바라보게 되면 협상은 사라지고 전부 아니면 전무의 투쟁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악마화 과정에서 상대는 협상의 파트너가 아니라 타도와 궤멸의 대상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타협과 협상의 예술인 정치는 사라지고 무한 투쟁만 남게 된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요새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행태가 전형적인 정치의 인격화를 보여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출석했다. 이 대표의 검찰 출두를 앞두고 야권 일각에서는 “이재명을 지키는 것이 민주당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이재명=민주당’이라는 것인데 이는 전형적인 ‘정치의 인격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이 대표는 억울하다” 혹은 “이 대표에 대한 소환은 정당한 법 집행이다”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정당이라는 존재, 특히 공당이라는 존재가 특정인과 동일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과거 3김 시대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3김의 정당들’이었다. 그런데 3김과 정당을 동일시했던 데는 긍정적 이유도 있었다.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화에 지대한 기여를 했던 인물들이고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맹주였기 때문에, 지역을 정당의 기반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이들 3김과 정당이 동일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을지 모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과거 ‘광주 민주항쟁’이나 ‘부마 항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역이 단순한 지역의 의미를 넘어 민주화와 관련이 깊은 일종의 상징성을 갖고 있었고, 이런 상징성과 YS와 DJ의 정치 역정이 연결됐기 때문에 이들을 단순한 지역 맹주로 취급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정치의 인격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3김 청산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지금은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 3김 시대보다 사회도 훨씬 다양화됐고 제도에 의한 정권 교체도 정착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어떤 정치인도 3김과 같은 상징성을 갖기 어렵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2일 공개한 여론조사(2022년 12월 28일부터 2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 응답률은 14.6%, 신뢰 수준 95%에 표본 오차는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적법한 검찰권 행사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응답이 50.6%에 달했다. 이런 결과는 이 대표가 과거 YS나 DJ와 같은 민주화의 상징 혹은 다른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정치의 인격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민주당’이라는 모습을 천명하듯이 이 대표의 검찰 출두에 동행했다. 정치의 인격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의원들이 오히려 앞장서 정치를 감성화시키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도 힘들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 판단보다 감정이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민주당이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견지할지 “그것이 알고 싶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