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찾아 보면 ‘오너리스크(owner risk)’는 대주주 등 오너(총수)의 잘못된 판단이나 불법행위로 인해 기업이 해를 입는 것이라고 나온다. 오너에게 모든 게 집중돼 있다는 것은 한 사람의 독선이 기업에 끼칠 수 있는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거대 기업의 경우 오너리스크는 경영 파행을 넘어 시장 교란과 나아가서는 나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오너리스크는 잊을 만하면 이슈가 되는 뉴스 단골 메뉴다. 하지만 지난해 이 사람만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오너는 없었던 것 같다. 장본인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지난해 10월 말 머스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를 인수한 뒤 ‘오너리스크’ 우려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지난해 커리어가 추락한 12명을 선정하면서 머스크를 단연 첫손가락에 꼽았다. 잡지는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경영자로 나선 기간은 세상에 형편없는 리더십이라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본보기가 된 시간이라고 혹평했다. 막무가내 식의 대량 해고로 회사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이용자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으며 정책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기를 거듭했다고 비판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우리가 본 머스크의 행동을 감안할 때 그가 대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고사하고 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일조차 맡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 머스크는 자기 자신을 자유를 수호하는 대단한 인물인 양 포장했지만 정작 눈에 거슬리는 언론인의 계정을 막고 경쟁사를 홍보하는 게시 글은 차단했다. 그의 독단적인 결정과 오만한 행동이 시장의 불신을 불러와 테슬라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지난 한 해 테슬라 주가는 65%나 폭락했다. 트위터 인수 뒤 머스크가 테슬라 경영을 소홀히 한다는 ‘오너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추락을 거듭했다. 머스크의 개인 재산도 1370억 달러(173조 310억 원)로 쪼그라들었다. 이는 최고점과 비교해 2000억 달러가 증발해버린 것으로 이만큼의 재산 손실을 기록한 사례는 없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머스크가 순자산 2000억 달러 감소를 기록한 역사상 유일한 사람이 됐다”고 전했다. 3일 새해 첫 거래에서도 테슬라 주가는 12.2% 급락했다.
머스크는 한때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에 이어 2021년 1월 개인 보유 재산 2000억 달러 고지를 역대 두 번째로 밟았고 곧이어 세계 최고 부자에 등극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억만장자지수를 기준으로 한 그의 재산은 2021년 11월 4일 3400억 달러(429조 4200억 원)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부자 1위 자리를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에게 내줬다.
머스크의 사례는 오너의 잘못된 판단·행동이 기업가치를 얼마나 훼손하는지 보여준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는 대주주의 역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오너가 뛰어난 결단력과 경영 능력을 갖추고 기업의 성장에 기여한다면 ‘오너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독단적인 경영이나 부적절한 처신으로 회사에 피해를 입히는 오너리스크에 빠지는 기업이 많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책임감이 결여된 특권 의식과 갑질 행각으로 직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주주의 이익을 훼손한 경영인이 적지 않았다.
‘머스크 리스크’의 원인과 파장을 곱씹어봐야 할 때다. 기업이 성장하면 그에 따라 사회적 명성도 오르고 영향력도 커진다. 특히 성공한 기업인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며 사람들에게 꿈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오만과 독선으로 흐르면 그간 쌓아온 명성과 성과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계묘년(癸卯年) 새해에는 우리 경영계에서 ‘오너리스크’라는 단어가 언급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창의적 발상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리더십, 미래를 위한 혁신을 준비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업가 정신이 넘쳐 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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