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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의 인사이트]노동 분쟁 해결시스템의 선진화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제조업·노조 중심의 전통적 방식

산업구조 변화로 실효성 떨어져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형 분쟁 해결 인프라 갖춰야





노동관계의 안정과 발전에도 계기가 있다. 물류 마비 위기를 일으킨 화물연대의 파업과 정부의 업무 복귀 명령은 전환점이 될 듯하다. 논란이 된 안전운임제와 화물운송업이 합리적으로 개편되면 노동관계는 성숙해지게 될 것이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법과 원칙을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공정한가에 대한 여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을 요구하는 젊은 층이 많아지면서 파업권의 남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러면서 정부의 업무 복귀 명령을 지지하는 여론이 많아졌고 화물연대 파업과 비슷한 시점에 발생한 다른 중요 사업장들의 분쟁도 평화적으로 해결됐다.

파업권은 보호돼야 하지만 남용돼서는 안 된다. 파업은 작업의 중단을 의미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권리는 근로자들이 노조를 통해 단체교섭을 할 때 허용된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노조법상의 노조가 아니고 화물차주는 사업주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의 단체행동은 노조에 허용되는 파업이라기보다 국민 누구나 갖는 결사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화물운송 서비스의 가격인 운임은 물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둘러싼 화물주인과의 갈등도 파업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해결돼야 마땅하다. 따라서 화물차주와 화물주인의 갈등을 줄이고 분쟁이 발생하면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되도록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으로 서비스업의 고용 비중이 커짐에 따라 노동분쟁의 성격도 달라진다. 제조업도 제품 수요가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만 서비스업은 서비스 수요가 고용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직무가 다양하고 분업 및 전문화를 통한 기업의 협력이 중요하다. 노동의 이동이 많고 고용의 형태도 다양하며 노조 조직률이 낮다. 하지만 노동분쟁 해결 시스템은 제조업과 노조 중심으로 설계돼 있고 단체교섭과 파업이 핵심 메커니즘을 이룬다. 따라서 서비스업 근로자에 대한 노동기본권의 전통적인 보장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 파업의 재발과 악화의 원인도 기존 분쟁 해결 시스템의 허점과 무관하지 않다.

화물연대 사태가 노동관계 발전의 전환점이 되려면 분쟁 해결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 경제의 서비스화와 디지털화에 더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보편화로 분쟁이 개별화되고 다양해지며 새로운 분쟁이 많아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제조업과 달리 서비스 기업은 재고를 쌓거나 파업이 끝난 후 생산을 늘려 손실을 보완하기 어렵고 근로자 또한 소득의 상실을 만회하기 어렵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게다가 제조업과 비교해 사람과의 관계가 많고 복잡해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차별과 괴롭힘 등 정신적인 문제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우울증 환자가 젊은 사람에게 많은 이유도 이러한 경제사회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노동력의 주체인 사람이 일하면서 겪는 갈등을 줄이는 것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과제다. 따라서 현재의 노동분쟁 해결 시스템은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인프라로 바꿔야 한다. 분쟁 당사자들이 합의해 정부는 물론 민간 전문 기관에 해결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법으로 금지된 문제가 아니라면 정부는 그 요청에 응해 분쟁 당사자들의 대화와 협상을 촉진해주고 해당 분쟁 전문가들에 의한 조정과 중재를 활용해 합리적인 해법을 찾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화물연대 사태와 법치주의를 넘어 노동관계를 성숙화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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