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상원,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했다. 선거 전 케빈 매카시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예산을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IRA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IRA 법안의 전면 개정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남은 것은 정부 간 협상이다.
지난 주말에는 정부·국회 합동 방미 대표단이 미국 행정부·의회 주요 인사와 IRA 관련 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출국했다. 이번 방미를 통해 한국과 미국이 경쟁자가 아닌 전략적 동반자 관계임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첫째, 미국은 한국을 통해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최근 한중 경제 관계는 상호 보완에서 상호 대체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전기차·배터리 산업 경쟁력 강화는 중국의 산업 경쟁력 상실로 직결된다. 현재 배터리 업계 세계 1위 기업은 중국의 CATL이지만 한국 배터리 3사는 중국 내수 시장을 제외한 지역에서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57%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 한국의 저가형 전기차는 IRA 정책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 최근 AP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향후 3년 안에 전기차를 구입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럴 의향이 없다’고 한 응답자가 약 70%로 나타났다. 미국 평균 전기차 가격은 6만 5000달러로 비싸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차 ‘아이오닉5’의 미국 판매 가격은 그 절반가량인 3만 9700달러다. 만약 현대차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 받지 못해 가격 경쟁력을 잃으면 미국의 전기차 보급 목표에도 큰 차질이 생긴다.
셋째, 엄격한 IRA 배터리 요건이 오히려 중국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높일 우려가 있다. 현재 배터리 4대 광물의 중국 점유율(제련 기준)은 리튬 68%, 코발트 84%, 니켈 76%, 망간 90%로 압도적이다. 미국 자동차 기업조차 배터리 부품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현실이다. 최대 경쟁자인 한국 기업이 배터리 광물·부품 대체재를 찾는 동안 중국이 광물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배터리 세계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 모기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최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미국 IRA에 대응해 유럽판 IRA로 맞불을 놓겠다고 밝혔다. 유럽의 최첨단 친환경 기술 보유 기업들이 대거 미국으로 생산 시설을 옮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보호무역주의 확대에 우리 기업들도 국내에서 해외로 투자를 돌리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으로 삼성전자 260조 원과 SK그룹 29조 원, IRA로 SK온 10조 원, 엘지화학 4조 원 등의 투자를 유치했다.
IRA 개정을 압박하는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반도체·배터리·바이오의 뛰어난 기술력과 거대한 생산 역량이다. 코리아 첨단산업 엑소더스는 우리의 국가 경쟁력을 상실하게 하고 외교안보 역량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IRA에 한탄할 시간은 지났다. 이제 국회 첨단산업 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K-IRA’ 제정 논의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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