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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생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싶은 당신에게

마음껏 여행·산책하며 몸 움직이고

식어버린 인간관계 따스함 되새기며

자기만의 문화·취미생활도 늘렸으면

팬데믹으로 잊혀졌던 일상 되찾기를





오늘 아침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크게 들려 창문을 열어보니, 초등학교에서 가을운동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가을운동회라니, 얼마나 오랜만인지요. 어린 시절, 운동회날은 아이들에게 찬란한 축제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공부를 안 하는 날, 숙제도 수업도 없는 날, 마음껏 뜀박질하고 청팀홍팀으로 나누어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신나고 재미있는 날. 물론 저처럼 운동에 젬병인 어린이는 응원의 기쁨만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그래도 ‘누가 뭐래도 공부 안 해도 되는 날’인 운동회날은 좋았습니다. 팬데믹 시대가 저물어 가고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것은 이렇듯 가을운동회를 비롯한 ‘아이들이 뛰노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팬데믹 시대가 저물어가는 요즘, 저는 ‘우리가 잃어버린 생의 아름다움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모든 좋은 것들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국내외의 수많은 어두운 뉴스들에 가려 오랫동안 잃어버린 생의 기쁨이 참 많았습니다. 첫째, 마음껏 여행하고 산책하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되찾아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가 한창이었을 때는 ‘확진자가 급증했으니, 오늘은 외식도 외출도 자제하자’고 결심했던 날이 많았지요. 이제는 마음껏 여행하고, 더 많은 야외활동으로 신체의 활력을 회복하며, 긴 겨울잠을 잔 것처럼 옹송그린 우리 몸과 마음의 기지개를 활짝 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사회적 거리 두기에 지친 우리 삶 속에서 식어버린 인간관계의 따스함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온라인 강의를 주로 했던 코로나 시대와는 달리, 요즘은 오프라인 강의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 강연에 찾아와주신 독자분들은 하나같이 설레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작가님, 직접 뵙고 이야기 나누니까 너무 좋습니다.” 국경조차 뛰어넘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강의도 좋은 점이 많지만, 오프라인 강의, 대면수업만이 지닌 인간적 따스함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친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대면강의의 커다란 장점이지요. 온라인으로 진행하던 북클럽을 대면 모임으로 바꾸니 뒤풀이의 기쁨, 따스한 스몰토크의 기쁨이 커졌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을 사람, 노을 지는 하늘을 함께 바라볼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집니다.

셋째, 직업이나 돈과는 상관없는 ‘나만의 문화생활과 취미생활’의 시간을 늘렸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일주일 중에서 가장 큰 휴식과 기쁨을 누리는 시간은 ‘첼로를 연주하는 시간’입니다. 몇 년째 첼로를 배우고 있는데, 실력은 생각만큼 빨리 늘지 않지만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 그 자체가 주는 기쁨이 그저 좋습니다. 일주일에 딱 두 시간이지만, 첼로와 함께하는 시간만은 저는 완전한 충만함을 느낍니다. 살아있음의 기쁨, 아름다운 멜로디와 하모니가 주는 조화로움, 음악이 있어 삶은 비로소 완전해지는 느낌이 좋습니다. 얼마 전에는 ‘모네 인사이드’라는 전시회에 갔습니다. 명동 한복판에서 이런 아름다운 미술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지요. 세잔은 일찍이 모네를 일컬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네가 가진 것은 오직 눈밖에 없다. 그러나 이 얼마나 위대한 눈인가!” 모네는 연못 위의 수련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을, 루앙대성당의 차가운 돌들이 가장 따스하게 빛나는 순간을, 평범한 건초더미가 가장 찬란하게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파리나 로마에 직접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일상 속에서 이렇게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우리 곁의 전시회들, 우리 곁의 동네 책방들, 우리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응원해주고, 찾아가주고, 함께하는 시간을 늘렸으면 좋겠습니다. 머나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서 당신의 삶이 가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순간을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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