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에서 우연히 <할머니체조대회>라는 책을 보게 됐다. ‘할머니들이 하는 체조 대회인가’하는 궁금증은 이제경(51) 작가의 인터뷰로 이어졌다. 이 인터뷰는 순전히 책의 제목에서 오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날을 잡고 만난 이제경 작가는 이제 막 인생 2막을 시작한 새내기 그림 작가였다.
그때부터 책이아닌 이제경 작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포기했다. 다행인 것은 꿈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림과 관련 없는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배웠고, 그러다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그림책협회에서 일을 했다. 그럴수록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은 더 커졌다.
이 작가는 중년이 되면서 찾아온 몸의 변화로 아침에 일어날 때 5분 정도 워밍업을 해야만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침에 일어나기위해 손과 발을 흔들며 워밍업을 하던 그때 ‘할머니들의 몸’이 퍼득 떠올랐다. 그날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이야기가 <할머니체조대회>의 초고였다. 그는 <할머니체조대회>로 50세가 넘은 나이에 그림작가로 데뷔해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
- 만나서 반갑다.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그림책협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지금은 이사로 재직중이다. 출판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으며, 이번에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 올해 데뷔한 건가.
“맞다(웃음).”
- 사실 작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정보가 많이 없어 궁굼했었다. 그럼 뒤늦게 꿈을 이룬건가.
“그렇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50대에도 도전하고 꿈을 꿔도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다.”
- 50대에 그림작가 데뷔라니 멋지다. 원래 그림 그리는 일을 했었나.
“어릴때부터 글과 그림을 좋아해 꿈이 미대에 가는 거였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에 가지 못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해 관련된 일을 하면서 퇴근 후 미술학원에서 계속 그림을 배웠다. 스물다서살때부터 4~5년전까지 꾸준히 배워온 게 그림작가 데뷔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 한 분야를 오랜기간 배우기가 쉽지 않은데, 그 만큼 그림을 좋아했던건가.
“맞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림과 관련된 일이라고 해야 겠다는 생각에 그림책협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림책 작가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림책을 좋아하니까, 그림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내가 협회를 그만둘 때 한 말이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바퀴가 잘 돌아가도록 기름칠해 주는 사람이었다며, 이제는 내 바퀴에 기름칠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아마 그때 내 스스로 자신의 서사가 많이 쌓였다고 판단했던거 같다.”
- 개인의 서사는 시간과 비례해 쌓이는 것 같다. 혹시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해 놓는 방법이 있나.
“누구나 아는 방법인데, 바로 적는 거다. 30대 후반부터 ‘모닝페이지’라고 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썼다. 꿈을 꾼 이야기든, 오늘 해야 할 일이든, 생각나는 이야기를 글로 써내려갔다. 그게 쌓여 몇권이 된다. 어느날 부터는 내가 글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 그렇게 서사가 쌓여갔다.”
- 그럼 퇴사 후 바로 그림책작가로 데뷔한건가.
“아니다. 세상일이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더라(웃음). 사실 내 인생이니까 나를 위해 살아보려고 회사를 그만둔건데, 정작 그만두고 나니 뭘해야할지 모르겠더라. 자신도 없고. 그러다 엄마가 크게 아프셨다. 엄마가 14일 정도 의식없이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그런 엄마 옆을 지키면서 엄마가 재능이 많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재능을 6남매를 키워내느라 펼치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의 미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게 자극이 돼 행동하게 됐다. 다행히 엄마는 회복해 지금은 건강하시다.”
- 그 사건 뒤 첫 번째로 한 행동이 뭐였나.
“내가 그림을 좋아하게 된 그 시작점을 찾아가 보게 됐다. 거기에는 안동 복주여중 재학시절 만난 선생님인 고 정영상 시인이 있었다. 그 분은 내가 그림에 빠지게 된 동기를 준 분이다. 선생님의 시에 대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환청’이란 주제로 지난해 4월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그림이 취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할머니체조대회>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우연히였다. 49세때 완경이 오면서 갱년기를 겪었다. 갱년기에 다양한 몸의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먼저 온 변화가 아침에 벌떡 일어날 수가 없더라. 꼭 한 5분 정도 워밍업을 해야만 일어날 수 있었다. 그 날도 그렇게 워밍업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모습을 본다면 우스꽝스러워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다 퍼뜩 떠오른 게 할머니들의 몸이었다. 우리는 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나. 20대에는 체조를 해도 되고, 80대에는 체조가 아닌 걷기를 해야한다는 식의 선입견 말이다. 그런데 아침마다 내가 하는 워밍업을 누군가는 체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에 다다르자 스토리가 떠올랐다. 그날 아침에 초고를 다 썼다.”
- <할머니체조대회> 속 할머니들이 체조를 잘하지 않아도, 실수를 해도 의연한 모습을 유지하는 게 보기 좋더라.
“맞다. 우리는 뭘 하면 잘해야 하고 실수를 하면 부끄러워하지 않나. 그런데 할머니들은 체조 자체를 즐긴다. 체조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도, 실수를 해도 괜찮은게 할머니들이다. 그게 다 연륜에서 나온 지혜덕분이 아닐까 싶다.”
- 보통 글을 쓸 때 타깃을 정하지 않나. 어린이만을 위한 책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가.
“그림책이보다보니 어린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그림책을 어린이만 읽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30대부터 50대 여성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꼭 30대부터 50대까지 여성들이 읽었으면 하는 이유가 있나.
“내가 걸어온 길을 걸어갈 예비 갱년기 여성들이 아닌가. 그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 <할머니체조대회>를 통해 그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뭔지 궁금하다.
“대회라고 하면 다들 목표가 우승이지 않나. 할머니체조대회는 그렇지 않다. ‘우승’, ‘성공’을 뺐더니 즐거워지고 도전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 그건 경험을 통해 얻은 메시지인 듯한데, 어떤가.
“맞다. 엄마가 나한테 미술을 하면 안된다고 말한게 30년 전인데, 그 이후로도 왜 미술을 하지 않았는 지 생각해봤다. 그랬더니 ‘미술해서 뭐할 건데’라는 지점에 다다르더라. 그래서 성공과 성취를 뺐더니 도전이 쉬워지더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집중한 결과 개인전을 열수 있었고 이렇게 그림책 작가로 데뷔도 할 수 있었다.”
- 그럼 이젠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자신이 꿈꾸고 애정하는 일에 쓸모없는 일은 없다. 당장은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앞이 잘 안보여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성공’과 ‘성취’를 빼면 도전은 즐거운 것이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봤으면 한다.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 책을 본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감사해 하고 있다. 출판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온라인 서점에서 주간 베스트 4위에 올라갔었다. 엄마들이 책을 보고 많은 리뷰를 달아주더라. 기억에 남는 리뷰가 이 책을 보고 아이에게 자신의 꿈, 할머니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는 글이다.”
- 지금 준비 중인 책이 있나.
“제 이름으로 내는 책은 아니고, 출판사에서 준비하는 책이 있다. 오는 11월에 어린이 인권에 대한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분쟁지역의 어린이들이 학교가는 길이 우리나라 어린이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답고 있다. 전문 그림책 작가가 아닌 활동가들이 모여 그림책을 만들었다.”
-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앞으로 그림책 작가로 꾸준히 활동할 계획이지만,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분쟁지역의 어린이 인권처럼 다양한 곳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출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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