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함께 택배를 배달하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았던 택배 기사 김 모(34) 씨와 그의 여자친구 A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강아지 ‘경태’와 ‘태희’의 치료비 명목으로 후원금을 받은 뒤 잠적한 혐의다. 경찰은 여자친구인 A씨를 주범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동경찰서는 기부금품법 위반·사기 혐의를 받는 택배 기사 김 씨와 그의 여자친구인 A씨를 지난 4일 오후 8시쯤 대구에서 검거했다. 이들은 도주 기간 동안 대구에 머물면서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반려견 두 마리는 이들의 주거지에서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발견됐다.
전직 체조선수로 알려진 김 씨는 반려견 경태와 태희의 수술비를 빌미로 여러 차례 후원금을 모금한 뒤 잠적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SNS 등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같은 수법으로 돈을 빌린 혐의도 받는다.
김 씨는 ‘반려견과 함께 배달하는 택배 기사’로 SNS 등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심장사상충을 앓던 유기견 ‘경태’를 구조해 돌본 사연이 알려지면서 김 씨가 운영하던 인스타그램 계정 ‘경태아부지’에는 22만 명이 넘는 팔로워가 모였다. 김 씨가 일했던 CJ대한통운은 경태와 태희를 ‘명예 택배기사’로 임명해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다 김 씨는 지난 3월부터 여러 차례 후원금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경태와 태희가 심장병에 걸렸는데 치료비가 없고, 누군가 차 사고를 내 택배 일도 할 수 없다’, ‘아픈 반려견을 치료할 돈이 없어 힘들다’는 게시물이었다. 후원자들의 모금이 잇따르면서 김 씨는 경찰 추산 약 6억 원 가량을 모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김 씨는 “(기부금품법 조항에 따라) 허가받지 않은 개인 후원금은 1000만 원 이상 받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후원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겠다는 뜻을 보였으나, 반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김 씨는 지난 3월 31일 돌연 SNS 계정을 폐쇄했다.
경찰은 지난 4월 국민신문고 진정을 통해 사건을 접수하고 김 씨를 사기·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범행을 A씨가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자신이 김 씨의 여동생이라고 후원자들을 속이며 SNS 계정 관리와 모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후원금 모금 등에서 A씨의 의견을 대부분 따랐고, 경찰 검거에 협조하며 혐의도 대부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A씨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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