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자신의 이름이 붙어 있을 로커가 있다면 그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평생의 길잡이가 된 책 한 권, 부모 또는 자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 어린 시절 사진, 각종 자격증이나 합격증 등 자신의 인생을 대변하는 물건으로 채우고 싶을 것이다. 열정적인 골퍼에게는 싱글 기념패나 홀인원을 했던 클럽이나 볼도 좋은 기념품이 될 것이다.
골프 역사에 큰 공로를 세운 ‘전설’들의 로커만 따로 전시된 곳이 있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있는 헌액자들의 로커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도 올해 3월 헌액됐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한국 선수는 2007년 이름을 올린 박세리(45)뿐이다.
이곳에 2017년과 2020년 두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2층까지 이어진 관람 루트를 따라 골프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6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다양한 클럽·그림·문서 외에도 4대 메이저 대회 트로피 등이 전시돼 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상징인 스윌컨 다리도 복제돼 있어 방문자들은 사진 한 장을 꼭 찍는다. 국내 업체인 골프존이 기증한 스크린골프 타석도 한 자리를 잡았다.
명예의 전당 내 멤버들의 로커에는 헌액자들로부터 기증 받은 각종 기념품이 전시돼 있다. 박세리의 로커에는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충족시켰던 2004년 미켈롭 울트라 오픈 우승 때 사용했던 골프백을 비롯해 여러 벌의 옷과 볼, 우승 사진 등이 들어 있다. 흑인 최초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멤버인 찰리 시포드(미국) 로커에서는 그가 1960년 받은 PGA 멤버 카드를 볼 수 있다. 유명 코스 설계가였던 피트 다이의 로커에는 흙이 잔뜩 묻은 낡은 작업화가 들어 있다.
핑 설립자 카르스텐 솔헤임의 로커 물건 중에서는 성경과 냄비가 눈에 들어온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솔헤임은 성경을 항상 곁에 두고 봤다고 한다. 그런데 냄비와 골프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미국 핑 본사에 문의를 하니 “솔헤임이 젊은 시절 주방용품 업체인 ‘미라클메이드’에서 일하면서 최고의 세일즈맨으로 선정된 적도 있는데 냄비는 당시 그가 팔았던 물건 중 하나였다”는 답이 왔다. 로커 아래 칸에는 솔헤임이 처음으로 만들었던 1A 퍼트를 비롯해 스테디셀러인 앤서 퍼터, 아이2 아이언 등 그의 히트작들이 골프백 안에 가득 담겨 있다.
올해 입회한 우즈는 무엇을 남겼을까. 그의 수많은 우승컵 중 4대 메이저 트로피, 그리고 PGA 투어 통산 최다승 타이기록(82승)을 작성한 2019년 조조 챔피언십 트로피가 들어가 있다. 2019년 마스터스 우승 당시 입었던 붉은 셔츠를 비롯해 몇 개의 클럽과 옷도 전시돼 있다. 우즈의 인생 첫 번째 홀인원 인증패도 있다. 우즈가 7세 때인 1982년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의 하트웰 골프파크 12번 홀에서 기록한 걸로 돼 있다.
스탠퍼드대가 우즈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일찌감치 공들였음을 보여주는 문서도 있다. 우즈가 14세 때인 1989년 이 대학 골프팀의 월리 굿윈 코치가 우즈에게 보낸 편지다. 굿윈은 편지에서 “몇몇 터프한 아이들을 찾고 있다. 우승자들이다”라고 운을 뗀 뒤 “이곳의 시설은 매우 뛰어나며 자금 또한 전 세계를 여행할 만큼 충분하다. 팀 동료들은 미국 최고다”라고 구애했다.
당신의 ‘인생 로커’에는 어떤 물건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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