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은 폭락, 원자재 값은 폭등.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인근이 전국에서 모여든 8000여 명의 농민들로 가득 찼다. “쌀값 폭락 대응, 신곡 선제 격리” 등의 피켓을 든 농민들은 연단에 선 발언자의 말을 따라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구릿빛 피부의 한 청년 농부는 굳게 쥔 주먹을 하늘로 높게 쳐들기도 했다. 직접 수확한 햇벼를 한 손에 쥐고 참여한 농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농가경영 불안 해소 대책 마련 촉구 농민 총궐기 대회’에는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등 9개 농민 조직이 참여했다.
이학구 한농연 회장은 “그칠 줄 모르고 떨어지는 쌀값 하락세와 나날이 치솟는 농업 생산비에 대한 보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조속히 농업 생산비 보전 및 쌀값 지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초과 생산된 구곡·신곡에 대한 시장격리 △중장기적 쌀 산업 안정을 위한 특단책 마련 △농기자재 가격 인상분 차액 지원 사업 시행 등을 요구했다.
쌀값은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에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쌀(정곡) 20㎏ 가격은 1월 5만 889원에서 8월 4만 3093원으로 급락했다. 4만 3066원이었던 2018년 5월 이후 가장 낮다. 전남 여수에서 60년 동안 농사를 지었다는 박현옥(75) 씨는 “여태 농사를 지으면서 요즘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다”며 “쌀값이 끝을 모르고 떨어져 흉년이나 풍년이나 늘 살림살이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다만 쌀값 폭락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마땅치 않다. 쌀값 폭락의 근본 원인은 쌀의 과잉 공급 때문인데 정부가 초과생산분을 구매해 격리시키는 것 외에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병충해나 장마 등으로 쌀 가격이 적정 수준이었던 2017년에 비해 현재는 쌀 생산 농가들이 늘어나며 공급량이 크게 늘어난 상태다.
반면 수요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치킨·피자 등 서양 음식을 찾는 문화가 확대된 데다 코로나19로 집단 급식 수요가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소비량은 56.9㎏으로 132.4㎏였던 1980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원유 가격 상승도 농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한농연에 따르면 5월 기준 무기질비료의 가격은 전년 대비 91%, 6월 기준 면세 경유 가격은 전년 대비 103.8% 상승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2021년산 작물처럼 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도록 선제적인 대책을 취하겠다”며 “다음 달 15일 전국 농가의 작황 전반을 파악하고 초과 생산된 수확물들에 대한 시장격리 등 필요한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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