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사임설에 휩싸인 프란치스코(사진)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도시 라퀼라를 방문했다. 라퀼라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스스로 물러난 첫 번째 교황으로 기록된 첼레스티노 5세(1215∼1296) 전 교황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첼레스티노 5세는 1294년 즉위 5개월 만에 사임해 '생존 중 퇴위'라는 첫 사례를 남겼다. 이후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 건강상 이유로 교황 직무를 내려놓으며 그 뒤를 따랐다. 베네딕토 16세 역시 사임 발표 4년 전인 2009년 라퀼라를 방문해 라퀼라를 방문한 교황은 생존 중 퇴위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교황청이 지난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8월 28일 라퀼라 방문 계획을 발표했을 때 사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교황은 사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5세의 고령인 데다 올해 초부터 오른쪽 무릎 상태가 나빠져 자주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그는 지난 7월에 "(사임의) 문은 열려있다. 일반적인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며 사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번 라퀼라 방문이 사임설에 다시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정황도 사임설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교황은 전날 새 추기경 20명을 대거 서임했다. 무덥고 휴가철인 8월에 추기경 서임식이 열린 것은 1807년 이후 처음이다. 일정대로라면 교황은 추기경 서임식 다음 날인 이날 라퀼라를 방문한 뒤 29∼30일 추기경 회의를 주재해 새 바티칸 헌장을 논의한다. 추기경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깜짝 사임 발표를 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교황 선출회의(콘클라베)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 중 약 63%(132명 83명)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임명한 인물로 구성됐다. 다만, 새 교황을 선출하려면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년에 새 추기경을 또 임명해 자신의 개혁을 이어나갈 후계 구도를 완전히 마련한 뒤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첼레스티노 5세 무덤 앞에서 묵묵히 기도한 뒤 "사람들의 눈에는 겸손한 자들이 약하고 패배자로 비치지만, 실제로는 오직 그들만이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그의 뜻을 알기 때문에 진정한 승리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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