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조선소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사장이 수년 전 오사카대 선박해양공학과를 방문해 학생들을 직접 만나 입사를 권유했다. 그는 많은 학생의 지원을 기대했겠지만 그해 입사 신청자는 한 명뿐이었다. 1998년 도쿄대가 선박해양공학과를 폐과한 후 오사카대는 일본에서 이 분야를 대표하는 대학이다. 그럼에도 졸업생들의 조선소 취업은 많지 않다. 특히 이 대학의 박사과정은 외국인 없이는 운영이 되지 않는다. 오사카대 특임교수로 3년간 선박해양공학과를 방문하면서 만난 순수 일본인 박사과정 학생은 단 한 명이었다. 이 학생은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바로 본교 조교수로 임용됐다. 석사생들이 다수 있지만 상당수는 졸업 후 전자 회사, 게임 회사, 금융 회사 등에 취업하고 그나마 몇 명이 해운 회사나 조선·해양 관련 연구기관에 들어간다.
2018년 중순에 일본의 1위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이 주력으로 운영하는 마루가메 야드를 방문했다. 당시 610m 길이의 도크에서는 2만 TEU 컨테이너선 두 척의 건조가 막바지였다. 그 중 하나는 지난해 수에즈운하에서 좌초 사고를 내 전 세계의 물동량 정체를 일으켰던 배다. 한국 야드와 비교해 3500~4000명 정도가 종사할 것으로 짐작했으나 자체 직원과 협력사 직원 각 1400명씩, 약 2800명으로 야드가 운영된다고 하루 종일 동행해준 최고 운영 임원이 알려줬다. 한국에 비해 일본 조선소는 많이 차분하고 근무시간 중 근로자의 이동이 적다. 아직도 일본 조선소의 생산성은 높다. 예를 들어 일본 조선소에서 대형 블록을 이동시키는 트랜스포터라는 대형 운반차를 움직이는 인원은 2명으로, 운전자와 뒤에서 주위를 살피는 신호수라는 보조원이다. 한국 조선소는 통상 운전자 외에 4명의 신호수가 트랜스포터의 전후와 좌우에서 따라간다. 그런데 이 야드 역시 젊은 사원이나 근로자의 유입이 적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종업원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은 용접 자동화율이 높기도 하지만 인력이나 수익을 고려해 많은 블록을 외주로 제작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인력 문제가 큰 고민거리인 것이다. 결국 이 조선소는 인접 지역 전문대학과의 협력을 통한 젊은 인력 확보를 계획하고 있었다.
한때 세계 조선 시장의 절대 강자로서 26만 명이 넘던 일본의 전체 조선 인력은 구조 조정을 거치며 1990년대부터 8만 명대로 떨어졌다. 호황기에 20만 명이 넘던 한국의 조선 인력도 지금은 9만 명대다. 현재 일본에서 사외공·협력공이라고 불리는 외주 근로자의 비율이 55% 정도이니 이 비율 또한 양국이 유사하다.
지난 불황기 동안 한국 조선 산업은 일본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은 현명함을 보여왔다. 일본처럼 생산 시설을 대규모로 축소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고 아직도 기술과 경험을 가진 우수 인력들이 적지 않다. 또한 금융을 통해 강한 구조 조정을 진행했던 일본에 비해 우리 정부는 산업 생태계를 고려한 여러 정책들을 시행해왔다. 그럼에도 구조 조정에 실패한 일본의 조선 산업으로부터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사안들이 많다. 특히 인력 변화는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다.
일본은 불황기에 희망퇴직 연령을 제한해 젊은 근로자들을 유지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조선소에 대한 실망과 사기 저하로 젊은 인력들이 많이 떠났다. 일본 조선 산업을 논할 때 항상 언급되는 고령화 문제는 단순히 종사자들의 나이가 많아지며 생기는 것만이 아닌 다른 배경이 있다. 한국의 경우 2015년 당시 20·30대 연령의 조선 인력 비중이 50% 정도였지만 2021년 들어 약 34%로 16%포인트나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50·60대의 비율은 23%에서 31%가 넘었다. 유사한 이유로 우리 조선 인력이 일본처럼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수주가 증가하면서 현재 국내 조선소들의 생산 인력과 기술 인력의 부족은 예상되던 일이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14년 13만명(사내협력사 기준)대에 육박했던 국내 조선업 생산직 근로자는 지난 5월 기준 4만8303명으로 급감했다.
조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최고 해법은 기업이 수익을 많이 내 고임금을 제시하는 것이겠지만 고수익은커녕 적자 폭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생산 인력에 대한 처우 문제는 사측과 노측 모두 일리 있는 주장들을 펼치고 있어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예고된 인력난에도 묘수의 부재는 어쩔 수 없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사태와 관련해 직고용 의견도 있지만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보면 현실성이 낮다. 시황 의존 산업으로서 시황은 언제든 꺾일 수 있고 이 경우 기업들은 생존까지도 위협받을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인력양성센터, 특화단지, 지자체 지원, 인력 채용의 다변화 등과 같은 여러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큰 효과를 기대할 단기 해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요즘 조선소들과 정부가 추진하고 해외 인력 확보는 완전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일정 부분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2015년에는 외국인 조선 인력이 1만 명을 넘었으나 지금은 5000명 이하로 떨어져 있으니, 사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와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E-9 비자의 고용 허가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2021년 크게 줄어든 것이 눈에 띈다. 따라서 그동안 줄어든 외국인 인력을 그만큼 재고용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그동안 노동환경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 주 52시간제 등과 같은 큰 변화들이 있어 과거와 동일한 상황이 아닌 점은 생각해야 한다. 언어 소통과 차이가 없는 최저임금제 적용으로 인한 국내 근로자의 불만도 분명 고민해야 하는 사안이다. 현재 가장 부족한 조선 인력은 용접 기능직이고 도장과 전기 기능직의 수요도 큰데 이들에 대한 기능 교육 시간과 비용, 그리고 이직 등으로 안정적 조업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여기서 논할 사안은 아니지만 외국인 인력에 대한 적극적 개방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이민법과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한국의 이민정책과 이민법들이 해외 산업 인력의 적극적 유입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여러 법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인력 양성과 유지는 장기전이며 기업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교육기관 등이 같이 협력할 일이다. 사기업에 대한 간섭은 없어야 하고 당장의 수요자는 기업들이지만, 인력 문제는 국가 산업 경쟁력 관점에서 봐야 한다. 특히 노동 집약적 대형 제조업은 인력을 단시간에 조정할 수 없고 전방위 산업이 강할수록 고용 시장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과거 조선 산업의 호황과 불황을 모두 겪으면서 울산시와 거제시의 지역 경제가 어떻게 변했는지 우리는 잘 봤다. 또한 기자재 업체, 장비 업체와 같은 전후방 산업체들에 대한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인력 양성은 예산만 투입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조선 인력의 양성과 유지를 위해 학계나 여러 기관들에 중앙 부처나 지자체, 그리고 기업 재원이 적지 않게 투입됐지만 그렇게 투입된 재원이 효과적이었다면 지금 이런 걱정을 하고 있겠는가. 오히려 현재의 인력난을 빌미로 사업비나 지원금을 확보하려는 이들의 목소리는 커질 것이다. 벌써부터 해외 인력 공급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인력 양성과 유지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계획과 전문적 조직을 만들어 장기적으로 시행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인구 및 생산 인력 감소, 젊은 세대의 비제조업 직업 선호, 주 52시간제 시행 등과 같은 여러 상황이 뿌리 제조 산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번 조선소 인력 부족을 계기로 정부나 국회에서 노동시장을 둘러싼 현재의 법령·제도 등에 대한 특단의 조치도 생각해볼 일이다.
김용환 교수는…MIT 해양공학과 박사 취득 후 미국선급 연구원, MIT 연구교원을 거쳐 현재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우샘프턴대 객원석학, 영국 왕립공학학술원 저명방문석학, 오사카대 특임교수, MIT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영국 왕립조선학회와 미국 조선학회 석학 회원, 다수의 국제 학회 의장 및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기업구조조정특별위원,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위원 등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미래해양공학 클러스터와 로이드기금 선박유탄성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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