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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녀에게 사인증여 각서 써 준 뒤 파탄…대법 "증여자 철회 인정해야"

민법상 유증 철회 효력 준용한 첫 판결

대법원. 연합뉴스




유언을 통해 재산을 증여하는 유증과 마찬가지로 사인증여 역시 증여자가 사정에 따라 생전 약속한 내용을 철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제기한 근저당말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사인증여 철회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2012년 1월과 2013년 4월 내연관계에 있던 B씨와 혼외자인 아들 C씨에게 자신이 사망할 경우 소유 부동산 등 자산 40%를 증여한다는 취지의 각서를 작성했다. 이후 2013년 5월 해당 부동산에 B씨 명의로 15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



이후 A씨와 B씨는 헤어졌고, 미성년자인 아들 C씨와의 관계도 단절됐다. 이후 A씨는 B씨와 C씨에게 한 사인증여를 철회한다며 근저당권설정 등기 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유증의 철회를 인정한 민법을 준용해 증여자가 사인증여를 철회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1, 2심 재판부는 "사인증여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철회할 수 있다"고 보고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인증여는 애정 등에 기해 은혜적인 요소가 강하며 사후행위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어 계약이라고는 하지만 통상의 계약에 비해 강한 구속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증여자가 수증자와 사인증여계약을 체결한 이후에 관계가 파탄상태에 이른 경우까지 사인증여 의사표시의 철회를 절대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유증의 철회에 관한 민법은 사인증여에 준용된다며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민법 제1108조 제1항은 유증자는 그 유증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써 유증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사인증여는 증여자가 사망하지 않아 사인증여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이라도 사인증여가 계약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법적 성질상 철회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며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증의 철회에 관한 민법은 사인증여에 준용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유증의 철회를 인정한 민법을 사인증여에 준용해 사인증여의 철회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학설의 대립이 있을 뿐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시한 적이 없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사인증여와 유증의 실제적 기능이 다르지 않은 점을 고려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인증여의 철회가 허용된다는 법리를 처음으로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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