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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혁파, 정권 넘어 일관된 추진해야 성공…규제개혁청 신설 필요 ” [청론직설]

◆양준석 한국규제학회장(가톨릭대 교수)

관료·정치인이 규제 쥐락펴락하면서 성과 없이 제자리

대통령, 강한 의지 갖고 ‘모래주머니’ 제거 설득 나서야

규개위 전문성 강화, 의원입법 사전심사기관 설치 검토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골목상권 지역특화 유도 필요

한국규제학회장인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가 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혁신을 성공시키려면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국민들에게 당위성을 설명해야 하고 일관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규제개혁청’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정부가 7월 말 경제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신속히 실천해야 할 50개 규제 개선 과제를 발표했다. 이달 4일에는 국무조정실이 첫 규제심판회의를 개최해 대형마트 영업일 규제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국무조정실은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새 정부가 규제 개혁의 첫발을 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규제학회장인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혁신을 성공시키려면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규제 개혁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양 회장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관되게 규제 혁파를 추진할 수 있는 상설 부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 수준의 ‘규제개혁청’ 신설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10년 전 규제를 만들 당시 정부는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을 주말에 열지 못하게 하면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골목상권이 활성화됐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쇼핑 패턴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대형마트·SSM·전통시장 모두 수혜를 보지 못했다. 의무 휴업일 규제로 인해 국내 쇼핑 시장 규모가 쪼그라들어 되레 유통산업 전체가 위축됐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한 탓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발생했다. 최근에는 배달 수요 급증으로 골목상권 보호라는 실익도 별로 없는 상태다. 제도 도입의 목적이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의무 휴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규제를 없애고 경쟁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 유통 시장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싸우는 구조가 아니다. 온라인 마트와 오프라인 마트의 싸움이다. 다만 골목상권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정부가 일부 소득을 보전해주거나 세금을 감면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 골목상권이 지역에 특화된 상품 판매에 집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동네 구석구석에 위치해 마트보다 지역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은 대형마트·SSM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점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를 잘 살리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도 규제를 ‘신발 속 돌멩이’ ‘모래주머니’ 등으로 비유하며 적극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낮은 투자율, 생산성 정체에 직면해 있다. 이로 인해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이 난관을 극복하려면 자본 생산성 제고와 투자 확대 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규제 혁신이 절실하다. 기업 활동을 움츠러들게 하는 낡은 제도들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과감한 규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국 경제가 위기를 돌파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규제 혁파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동안 규제 개선이 진전 없이 제자리를 맴돈 주된 이유는 추진하는 주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규제를 만든 행정 관료와 정치인들이 어느 순간 입장을 바꿔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다반사다. 국민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거나 표를 얻기 위해서다. 규제 완화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규제를 쥐락펴락했으니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규제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 의지, 구체적 목표 제시, 피규제자 입장에서의 개혁 등이다. 역대 정권마다 규제 완화를 외쳤지만 대부분 실패한 것은 세 가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가 나름의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직접 규제 개혁 과정을 챙겼다. 각 부처에 규제 숫자를 파악해 보고하게 한 뒤 그 절반을 무조건 줄이라는 명확한 지침을 내렸다. 또 중복 규제, 덩어리 규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본격적인 대응책 논의를 시작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규제 개혁에서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지도력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규제 완화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편이다. ‘대기업들에만 유리해지는 것이 아닌가’ ‘국민들의 안전에 해가 되지 않을까’ 등의 의구심이 많다. 규제 혁파를 성공시키려면 위정자가 나서서 이런 의문을 해소해줘야 한다. 규제 완화가 한쪽에 치우치는 개혁이 아니라 경제·사회적 목적을 가장 효율적·객관적·중립적으로 이행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규제 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대통령 직속의 ‘규제개혁청’을 만들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개혁을 주도하는 정부 조직이 달랐다. 규제개혁위원회나 국무조정실 위주로 한 적이 있었고 대통령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만든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조직 구성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정치 논리로 규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특별위원회는 대통령이 바뀌면 공중분해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규제 샌드박스’의 성패도 후속 조치에 달렸는데 정권 교체 이후 관심에서 멀어지는 모양새다. 누가 정권을 담당하느냐에 관계없이 규제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려면 대통령 직속의 상설 부처가 필요하다. 부(部) 규모는 아니더라도 공정거래위원회 수준의 규제개혁청 신설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기업들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우리 기업들은 주로 경제 단체를 통해 정부에 규제 개선을 건의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단체들이 나서서 이런저런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힘드니 풀어달라는 식이다. 하지만 대다수 규제에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정부는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직접 나서서 ‘규제 개혁은 친(親)기업’이라는 오해를 불식할 필요가 있다. 규제 혁신이 소비자 편익을 증진하고 일자리도 창출해 국민들에게 이득이라는 사실을 경제계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최근 정부의 경제규제혁신 TF가 50개 규제 개선 과제를 발표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규제 혁신을 5년 내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50건 중 10건 정도의 규제 과제를 확실하게 실행해 그에 따른 효과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공 사례를 몇 개 만들면 규제 개선 논의가 훨씬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규제개혁위원회가 되레 규제 혁파의 걸림돌이 됐다는 비판도 있다.

△규제개혁위의 설립 취지는 규제가 국민들이 원하는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지 등을 꼼꼼히 심사하고 정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위원들로 구성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규제개혁위원 대다수는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규제 개선보다는 이해 단체의 이익 보호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규제 심사의 균형이 무너지면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규개위의 전문성 부족도 문제다. 각 부처에서 제출하는 규제영향평가는 품질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공무원들이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부실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규개위의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규제영향평가의 적정성 여부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부작용이 우려되는 규제를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규개위의 규제영향평가가 ‘거쳐야 하는 요식 절차’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규제영향평가의 품질을 향상시키겠다고 약속했으니 이를 실천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의원 입법이 규제를 양산하는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 입법은 규제영향평가, 규개위 심사, 법제처 심사 등의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의원 입법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므로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당수 의원 입법이 법안의 필요성보다는 의원 개개인의 입법 실적 쌓기로 악용된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의원 입법도 정부 입법과 같은 과정을 거치도록 의무화해야 하다. 의원 입법을 규개위에서 심사하는 것이 3권 분립에 어긋난다면 의원 입법을 다룰 기관을 별도로 신설할 필요가 있다. 그 역할을 국회예산정책처에 맡기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어내는 의원 입법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의원 입법에 대한 사전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건가.

△규제를 개선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의 규제를 고치거나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어렵다. 각각의 규제와 관련된 이해 단체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의 방법은 사전 심사인데 이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법안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에 철저한 심사를 통해 문제의 소지가 있는 규제를 미리 없애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의원 입법에 대한 규제영향평가 의무화가 제기되는 것이다.

◆He is…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들어가 책임연구원·연구위원을 지냈다. 2003년부터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7월 한국규제학회장에 취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OECD 규제개혁 국별 검토’ ‘한미 통상 현안과 정책 과제(이상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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