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세대들의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전공에 따라 취업의 문이 더 좁아지다 보니까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의미로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문과 전공 선배로서 마음이 아프다. 군에서도 예비전력 담당자 사이에서 ‘예비전력이어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자조적 표현인 ‘예송합니다’가 생기고 있다니 걱정이 크다.
유사시에 현역만으로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려면 평소 유지해야 할 군사력 소요가 너무 커서 국가 경제에 심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그런 방위 전략을 채택하지 않는다. 평시에는 국민의 수와 국가 경제력을 감안해서 상비 전력을 운영하고 위기 발생 시 동원을 통해 전투력을 확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에 예외가 있으니 바로 북한이다. 1970년대 초까지 우리보다 잘살던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된 배경에는 경제 수준에 맞지 않게 평소 130만 명이 넘는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산업 현장에서 경제를 돌려야 할 젊은 청년들을 10년 가까이 군에 소집했기 때문이었다.
예비전력은 평시에는 전쟁 억제력을 제공하고 유사시에는 국가를 보위하는 주전력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예비전력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관심은 매우 저조하고 보유한 장비와 물자는 대단히 노후돼 있으며 훈련 시간 또한 충분치 않은 게 현실이다. 현역 시절에는 최신예 장비를 다루던 병사가 예비군이 돼서는 듣도 보도 못한 구형장비를 다시 배워야 하니까 현역 때 배운 노하우의 활용은 고사하고 훈련 시간마저 부족한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국방비의 0.4%에 불과한 예산(2022년 기준 2612억 원)을 전투 및 훈련물자 확보, 훈련장 신축과 유지, 예비군 훈련 보상비 지급, 예비군 자원 관리 등 예비전력 운영에 관한 모든 분야에서 사용해야 하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가 자랑했던 ‘국방개혁 2.0’에 국방비의 1%를 예비전력 관련 예산으로 확보하겠다고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5년 내내 0.4%만 편성하고 집행했으니 그동안에 예비전력의 질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국가 차원의 동원 등 예비전력을 담당하던 조직인 비상기획위원회가 해체된 후 이러한 과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 부처가 중앙정부에 없다는 점이다. 국가총력전 체제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모양새이다. 대통령이 민간위원회의 운영을 선거 공약으로 약속했던 터이니 가칭 국가비상대비위원회를 만들어서 이러한 문제들을 바로 잡아주기를 기대한다.
문과 출신이 취업에서 의붓아들 대우를 받는 것처럼 예비전력이 같은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예송합니다’가 그냥 애드리브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위기의 순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다음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가 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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